국민의 품에 돌아온 '청남대'를 돌아보고

"여러분, 오늘은 대통령이 된 기분으로 하루를 사세요"

등록 2009.12.14 11:09수정 2009.12.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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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12월 12일을 택했을까. 오늘이 조영래님의 기일이라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읽고, 마누라와 둘이서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10시 20분,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가까이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충청북도 관광안내 자료를 이것저것 얻었다. 바로 311번 청주시내버스를 타고, 남으로 청주시내를 다 빠져나가,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관리사업소 앞에 내렸다.


11시가 좀 넘었는데 새벽밥을 먹어서 그런지 출출했다. 근처 한식집에서 6천원에(1인당) 구수한 장국밥을 배가 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충청도의 인심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청남대관리사업소에서 독점 운행하는 버스비가 1인당 왕복 2400원, 입장료가 어른 5천원, 어린이·경로 3천원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대청호반으로 나있는 길을 13km 달렸다. 겨울이지만 푸근하고 청명한 날씨가 청남대로 들어가는 경관을 더 아름답게 하였다.

12시가 좀 지나서 청남대 안 주차장에 내려,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청남대는 1980년 대청댐(금강의 대청호 안에 있어, 충청북도 주민의 식수와 농업용수를 저장하기 위하여 만들었다)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의 뜻에 따라, 1983년 6월에 착공하고 6개월 후인 12월에 완공하였습니다. 역대 대통령은 여름과 명절휴가 등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20년간 총 88회, 400여일을 이곳에서 지내셨습니다. 휴양 중에도 항상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은 물론 338 경비대 250여명이 4중 철책 경계로 경비를 하였으며, 2003년 4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어 개방된 이후, 현재는 충청북도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1983년에 설립된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코스를 만들어 가장 많이 이곳을 찾아 애용했고, 걸음이 불편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골프를 못 쳐서 초가집을 만들어 시골의 졍경을 즐겼다 한다. "국민이 대통령이다"란 말을 한 노무현 대통령은 잔디밭 헬기장에서 충청도민에게 이곳을 내주어서 국민들의 휴식공간과 산책코스로 제공하였다고 한다.

청남대 경내엔 걸어서 다니는 길이 많다. 30분, 1시간, 2시간 반 코스를 관광객이 자유롭게 선택한다. 가장 중요한 곳은 본관이다. 대통령의 집무실, 회의실, 손님 접견실, 침실, 주방, 식당, 가족들의 생활공간, 오락실...... 대통령은 휴식기간에도 막중한 국사를 처리해야 하니, 제대로 마음과 몸을 쉴 수 있었을까 하는 동정심이 생긴다.


전체 시설은 서울의 청와대를 본따서 만든 듯하다. 수원에 있는 화성 행궁 같은 것인가. 봄부터 가을까지는 갖가지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토끼나 고라니 등의 짐승이 자유롭게 노닐고, 호반산책로에는 어디나 화강석으로 만든 듯한 스피커에서 은은히 음악이 나온다. 황토를 잘 다져 만든 산책길, 싱싱한 물고기가 뛰노는 양어장, 수영장, 골프장 등 우리 같은 서민이 걷기에는 너무 황송하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 천국이 뭐 따로 있나 !" 하는 탄사가 저로 난다. 이런 천국에서 대통령은 한 달 수입이 100만원도 안 되는 서민이나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정책을 제대로 구상할 수 있었을까?


이 어마어마한 시설을 만드는 데 국민 세금이 얼마나 많이 들었으며, 또 지금 이 시설을 유지 보수 관리하고, 90명이나 되는 관리소 직원들의 인건비는 어떻게 충당할까? 관광객 입장료, 독점 운행하는 버스비, 신혼 부부의 사진 촬영 장소 제공료 등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잘 가꾼 잔디밭 헬기장에는 실물대보다 더 큰 다섯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전시되어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얼굴이 전시돼 있다. 다섯이 다 웃고 있지만 표정은 너무나 다르다.

'청남대는 대통령의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과 '청남대는 국민의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의 표정은 아주 대조적으로 보인다. 1983년에서 2003년까지는 불과 20년의 세월이다. 선진국에서 몇 백년에 이룩한 의식의 변화를 우리는 압축해서 이룩한 것이다.

청남대 개방 기념탑은 청원군 주민 5800명의 돌로 쌓았다. 문의면 32개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고, 탑모형은 청남대 주봉인 장군봉을 본떠서 만들고, 아주 서툰 글씨로 청남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 준 고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끝으로 '대통령역사문화관'에 들렀다. 역대 대통령들의 일생의 일들을 전시하고 있다.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 내외의 양각된 두 손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시물은 긍정적인 면만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부정적인 면을 비판하는 전시물은 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잘 모르는 관람객들 특히 젊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주지는 않을지 몹시 두렵다. 제 나라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민족은 앞날이 없다. 관계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청남대는 이제 현대사의 유물이 되었다. 청남대를 세운 사람, 청남대를 즐긴 사람, 청남대를 주인에게 돌려 준 사람에게서 민주주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란 말이 새삼 생각난다. 거의 4시가 다 지나서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안내원의 말이 다시 들린다

"오늘 하루는 대통령이 된 기분으로 사셨어요?"

돌아가는 마음은 또 어두워진다. 청남대를 세운 사람 같은 사람들의 정치 뉴스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청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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