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유기, '남의 일' 같지 않다

아빠가 되고나서 미혼모를 생각하다

등록 2010.03.08 16:28수정 2010.03.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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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유독 신생아나 영유아와 관련된 비참한 사건들을 자주 접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느낀다. 아마 이제 갓 100일이 지난 딸아이의 부모라서 그런 뉴스들이 더 귀에 박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만의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경험은 위와 같은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꿔 놨다. 예전엔 아이를 모텔이나 화장실에서 혼자 낳은 뒤 유기하고 '도망간' 엄마들을 그저 철없는 사람들의 정신 나간 행동 정도로 치부해 왔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있었으나 그렇게 아이를 버린 엄마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내 아내가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신음을 토해내며 진통에 맞서 아이를 낳는 과정을 본 후, 그들을 생각하게 됐다.

내 아내는 안전한 병원에서, 남편을 바로 옆에 두고 있음에도 진통과 분만의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다. 끔찍한 진통을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기에 신음하는 아내는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지켜주는 이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여관방에서, 심지어는 공중화장실의 변기에서, 그것도 혼자 치러낸다니. 이제 그런 뉴스를 들으면 혼자서 그 모든 고통을 겪어내는 순간 그들이 느낄 감정이 나에게 전이돼 오는 것 같아 견딜 수 없게 됐다. 또 그렇게 버려지는 신생아들의 상황이 이제 갓 100일이 지난 딸아이와 겹쳐지면서 이것 또한 미칠 노릇이 됐다.

그렇게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사건들이 더 이상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제 한없이 작고 보살핌이 필요한 생명을 키워야 하는 일이 우리 부부의 현실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혼모들의 영아유기'라는 결과에만 약간의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 과정과 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의식'하게 됐다. 달라진 관점에서 보니, 위와 같은 사건들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행태가 지나치게 결과만을 조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언론에선 '한 미혼모가 끔찍한 방법으로 영아를 살해했고, 결국 구속됐다'는 식의 단순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은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산부인과'가 미혼모와 신생아 유기에 대해 비교적 현실적인 관점으로 조명한 바 있다. 극 중 주인공인 산부인과 의사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하면서, 콘돔의 올바른 사용법을 시연해 보인 장면은 대단히 신선했다. 또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미혼모가 신생아를 안전하게 '버릴'수 있도록 한 공간이 병원 등에 마련돼 있다는 사실도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또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기도 하다. 내 경우처럼, 아이의 탄생이라는 경험이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한 드라마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다. TV 뉴스나 주요 언론들의 보도 역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미혼모 등의 뉴스를 대단히 선정적으로 다루는 현재의 보도행태는 절대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외국처럼 아이를 버릴 수 있는 공간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혼모들이 아이를 혼자서 출산해야 하는 비극이 줄도록 제도적인 보호대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지금 나의 아내는 출산의 고통은 잊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아이와 부대끼며 행복해 하고 있다.

아마 원하지 않는 아이를 혼자서 낳는 경험을 가진 사람은 결혼을 해도 과거의 기억을 떨쳐내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지금 나와 아내가 아이를 통해 느끼는 행복감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기의 모습.
환하게 웃고 있는 아기의 모습.엄주현
#출산 #미혼모 #신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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