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과 한명숙의 맞짱 토론이 나를 아프게 했다.
오세훈은 잘 생겼다. 말도 달변이다. 자신감도 있고, 그 자신감이 조금은 믿음직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명숙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다는 '썩소'를 날리는 모습, 자신이 왜 웃음을 날리는지를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얄밉고 건방져 보이지만, 그게 오세훈의 강점이기도 하다. 한때 변호사였고, 한때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시사토론 진행자였던 오세훈에게 토론이란 재미있는 게임이다. 100전 100승을 자신할 수 있는 게임...
이에 반해 한명숙은 차분하다. 달변은 아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고 무엇보다 겸손하다. 그런데 그 겸손함이 토론에서는 밀리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오세훈이 '썩소'를 날리며 끊임없이 얄미운 연타를 날리는데도 그녀는 오세훈과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하지 않는다. 아니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한명숙, 그녀의 삶에서 인간을 그렇게 대접한 적 없다.
사실 나는 이게 아팠다. 맞지만 말고, 한 방 크게 날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명숙에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날린다고 날려도 대부분 헛펀치다. 참모들이 짜준 듯한 오세훈에 대한 공격 포인트를 조목 조목 이야기하지만, 사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태도와 시선이다.
한명숙은 오세훈과 한나라당에 '썩소'를 날린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태도와 시선은 그런 웃음을 어색해 한다. 당연하다. 그녀는 그렇게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난 한명숙의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녀를 신뢰하지만, 토론을 보는 내내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왜 오세훈한테 저렇게 당하기만 하는 거야?
그렇다. 난 같은 오씨지만, 나만큼 말도 잘하고, 잘 생겼지만(^^), 오세훈 후보가 서울 시장에 되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오세훈을 반대하는 것은 그가 한나라당 후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는 서울 시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 개인이 어떤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있어 도시의 권력을 누가 가지느냐는 눈곱만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 명제는 도시를 움직이는 권력이 개인의 일상적 공간과 관계를 망쳐놓지 않는다는 전제 안에서만 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리더가 개인의 공간을 전쟁, 폭력, 살인, 감시 등으로 망쳐놓지 않을 때만 유효하다.
난 두렵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폭력에 대한 둔감함, 개발에 대한 집착,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거부감이 두렵고, 도시적 차원에서는 오세훈 서울 시장 후보의 역사에 대한 무지, 인간과 공간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불편한 것, 더러운 것, 무식한 것에 대한 냉소가 두렵다.
이것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체적인 공포다. 재개발의 논리 속에 폐허가 된 용산참사 현장, 밀폐되고 폐쇄된 서울광장, 폭력적이고 요란하기만 한 광화문 광장, 365일 공사 중인 한강, 사라진 노점상과 피맛골, 인간적이며, 매력적인, 매력적이면서도 역사적인 공간이 하나 둘씩 무너졌고, 그 무너진 공간 속에 개발의 포크레인이 아스팔트를 깔고 빌딩을 올리고 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있던 시민들은 하나 둘씩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그 사라진 공간 속에 자본이 스멀스멀 들어왔다.
여기서 나를 두렵게 하는 한 가지는, 지난 4년 간 서울의 일상 공간에서 실천된 비인간적, 비민주적, 탈역사적인 행위들이 추상적인 개념과 숫자로 무장하여 오세훈의 치적으로 치환된다는 거다. 잘못된 일이 잘된 일로 변신하고, 그럼으로써 잘못된 일이 강화, 재생산되는 악순환 구조의 고착화.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세훈은 일을 잘하고, 일만 열심히 하는 시장임을 강조한다. 나는 이 말에 100% 동의한다. 그는 일을 너무 잘 한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이 세계27위에서 12위로 상승한 것, 금융경쟁력이 15단계 상승한 것, 관광객이 30% 늘어난 것, 서울시 청렴도가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상당부분 그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오세훈 후보가 일을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서울 시민의 삶은 점점 더 강팍해진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지만,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똑똑하지만 지나치게 독선적이다. 오세훈의 일하는 스타일, 반성은 없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사실 전진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정체하는 것보다 어쨌든 꿈틀거리는 게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전진이 시민들을 위해 나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위해 나아가기만 한다는 거다.
그가 열심히 일을 해서, 서울이 변할 것은, 그의 권력에 화려함을 더해 줄 숫자, 등수 뿐이라고, 감히 나는 확신한다. 더 큰 문제는 숫자와 등수가 오세훈 시장의 절대 목표가 되면서 서울 시민들의 삶이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 또는 목표를 위해서는 희생도 감내해야 하는 물건으로 전락한다는 거다. 한 도시의 수장이 숫자와 경쟁력에 목숨 걸면, 그 숫자 때문에 상처받고 허덕이는 것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 난 그 희생타가 되고 싶은 맘, 죽어도 없다.
정치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내가(사실 이것도 비극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인데, 왜 나는,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할까? 정치인을 미워하는 것과 정치에 냉소적인 것은 좀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하는데, 사실 그게 쉽지는 않다. 이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투표도 안하고, 그러다보니, 미워하는 정치인들이 계속 정치를 하게 되고, 당연하게도 세상은 좀 더 혼탁해지고, 그럴수록 정치 냉소 지수는 점점 더 높아지고... 뭐~ 서울은, 이 나라는 그렇게 혼탁해진다.) 서울시장 후보토론회를 보다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토론회를 본 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서는 안되는 백만가지 이유가 확신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내가 토론회에서 유심히 본 것은 그의 빨간 혓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산유수와 같은 말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보여지는 시선, 태도였다. 말은 의도되고 준비된 것이다. 그래서 오세훈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태도, 시선은 오세훈의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명숙 후보에 대한 냉소적 시선, 무식하다는 비웃음, 대화가 안된다는 한숨 등은 그가 자신보다 덜 떨어졌다고 착각하는 서울 시민 대부분을 어떤 식으로 대했고 대할 것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난 그의 엘리트적이고, 권력지향적이며, 비인간적인 모습에 공포심을 느낀다. 그는 지나치게 똑똑해 평범함과 비루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쟁주의적이어서 경쟁에 뒤쳐진 사람을 돌아보지 못하며, 지나치게 이밴트 지향적이고, 개발 지향적이어서 일상으로서의 공간이자 어제와 오늘이 포개진 역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시는 화려한 기억과 투박한 기억, 과시할 만한 공간과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공간, 풍요로운 삶과 궁핍한 삶이 공존하는 장소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우격다짐으로 만드는 서울은 그래서 기형 도시다. 빛은 취하고 그림자는 버리는 서울, 기억은 거세하고 그 위에 화려한 오늘만을 덧칠하는 서울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시가 정상일 수 없다. 화려함이 커질수록 그 밑에 두텁게 깔리는 상처와 아픔도 커지는 법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지난 4년, 서울이 그렇게 변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변화를 경쟁력 상승이라 좋아하는 오세훈 후보는 재선이 확정되는 순간, 그 변화에 무시무시한 가속도를 붙일 거라는 점이다.우리는 어떤 서울을 원하는가? 꿈꾸는 서울은 각자 다른 모습이지만, 적어도 기형도시는 막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시대의 아픔을 모르고, 소외된 자의 침묵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오만한 자가, 아픔을 모르는 오만한 자가 서울의 리더가 되는 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비극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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