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조계사에서 4대강 반대를 위한 3국여인(인터넷카페 소울드레서, 쌍코, 82쿡) 등이 기금 마련 바자회를 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애초 망설였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저 행사 다 망치겠다. 나라도 머릿수 채워야겠다"는 생각에서 무거운 자리를 털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역시 촛불집회 원동력 3국여인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배우 문성근이 나와 야권단일정당 운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여균동 감독 등,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 때문에 빗속 감동이 살짝 일었다.
사실 야권단일정당운동은 당위다. 집권 측의 지리멸렬 속에도 야당이 분산되어 있어 민의가 충분히 정치권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 운동의 당위성을 채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각 야당들이 이념과 지향성이 서로 다르다고 다짐하고 있는 신념체계가 너무나 굳건한 까닭이다. 또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자신들의 기득권 여부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데 대한 일말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정당개혁운동이 만족스럽게 성공한 예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이 운동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각 정당은 산전수전 다 겪어온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런 류의 순수한 운동을 믿지 않는다. 명분은 좋으나 자신의 일부 권력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위험한 모험은 즐기고 싶지 않기 때문. 그래서 이런저런 논리와 현실성을 들어 곧잘 실패할 실험이라고 단정짓고 이 논리를 확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막히면 뚫리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과 창조한국당 등 기존 정파의 지지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비토하지 않는 인물이 문성근이다. 개별적으로야 호불호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이같은 신뢰는 문성근 개인뿐 아니라 부친인 문익환 목사로부터 이어온 운동의 순수성과 비정략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운동은 사실 당위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 운동주체들의 실천역량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이 운동이 놓인 정치 환경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운동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야권이 보다 튼튼한 끈으로 결속되어야 하는 것은 민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국민주정치의 기본을 되찾는 일이란 뜻이다. 역사는 새로운 흐름 속에서 나타난 인물을 중심으로 변화하고 새로워지지만, 그렇다고 탁월한 인물이 나타나야만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없는 인물을 억지로 만들 때, 오히려 전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도 우리는 최근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더구나 3김과 노무현 이후, 적어도 야권에서는 이전 시대의 카리스마와 같은 인물을 구하기 어려우며, 그와 같은 카리스마로 집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 다행스럽게도 모두 동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인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하는 초인(혹은 메시야) 정치에서 시스템 정치로의 전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개인을 두고 정치의 희망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제 다소 원시적 관점이 되어가고 있다. 개별 정치인들이야 각자 성장도정에 있고, 그 꽃이 언제 피워질지 모르나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야권의 지리멸렬은 특정 야당 정치세력이나 특정 야당 정치인에게 맡겨두기 어려운 현실이란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은 누구라도 나서서 야권의 단합을 외쳐야 한다. 이 단합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나서는 정치인이 있었더라면, 역설적으로 야권은 그를 중심으로 단결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사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각자가 가지는 기득권 영역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야권 현실, 그래서 국민이 마음 둘만한 정치세력을 갖지 못해 희구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이 최소한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보내고 난 야권과 개혁진보진영의 현실이기에 개혁과 진보를 고민하는 국민은 점점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때에 문성근이 야권단일정당운동을 돈키호테 마냥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다. 연 3일을 비오는 날 혼자서 거리를 휘저으며 전단을 나눠주고 야권단일정당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야권단일정당운동은 사실, 정치학적으로 보면 뜬금없는 짓이다. 야당이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국민 지지를 얻으면 되는 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이 이 뜬금없는 짓을 하게 만든다. 즉 대통령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이기에 양단간의 결판을 요구한다.
대통령제가 자연스럽게 양당제적 요소를 갖추게 만드는 권력형태라는 말이다. 그런데 국민을 가만히 보면 매 총선 때마다 양당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당제를 만들어 놓는다. 다양한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선호에 따른 다양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정치하라고 정치인들에게 등 떠민다.
그러나 원내에서의 정치활동은 대다수 사안이 가부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즉 '모' 아니면 '도'다. 다수의 정당들이 원내에서 절충하고 타협하기보다 제1당과 제2당의 주문 중 하나로 결론이 귀결된다. 이런 원내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중간지대는, 적어도 원내에서는 의미없는 집단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총선이후에 무소속을 영입합네, 3당 합당을 합네 하면서 다당제 국회를 양당제 국회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이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법률이 20석 이상 가져야 발언권을 갖는 원내교섭단체 개념이다.
그러니까 국민이 만든 다당제적 성격을, 현존하는 정치세력들의 기술과 힘에 의해 정치가 양당화되고, 양극화되는 것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처럼 야당연대를 통해 집권 측을 상대하기도 하지만 그 아이디어의 기본구도도 양당제 개념이다. 바로 이런 현실이 야권단일정당운동의 현실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다당제가 보장되는 내각제하에서는 뜬금없는 야권단일정당운동도 사실상의 양당제인 대통령제 하에선 그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프랑스처럼 결선투표가 없는 열악한 제도환경도 우리 국민이 '한번에'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그래서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을 놔두고, 말이 좋아 전략투표지 사실상 맘에 없는 투표를 해야 하는 재수없음도 이제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이다.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키를 쥐고 있다. 야당들이 각자의 이념에 충실하든, 기득권에 탐닉해있던 상관없이 대동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반민주적인 수구세력이 역사를 퇴행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이들을 각기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현실성이 없다며 모두가 안 된다고 손놓고 있다면 미래와 희망은 없다. 유권자와 지지자들이 각성으로 실천에 나서지 않는다면 야만적 정치보복과 반칙과 특권이 횡행하는 사회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체념과 굴종의 시간이 연장될 뿐이다.
일부에서는 문성근의 돈키호테식 캠페인을 아마추어리즘의 산물로 보는 이도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프로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면 가끔은 아마추어들이 나설 필요도 있다. 왜냐면 대다수 야권지지자들이나 유권자도 아마추어이기에 불신받는 프로보다는 같은 아마추어가 나서준다면 적어도 '신뢰가능성' 면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프로골프에서도 가끔은 아마추어가 나서서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일도 있지 않은가. 프로들이 메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아마추어가 나서서 경직된 판 자체를 갈아엎거나 긴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 것이다.
단순한 결론을 말하자. 이 운동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같은 교착상황에서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운동이다. 특히 반민주적 수구세력의 야만적 폭력앞에 노출된 국민이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야권의 단일정당운동은 당위적으로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석수의 자유자재'(http://blog.daum.net/kss60)에도 동시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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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문성근의 야권단일정당운동을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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