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대물>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10월 14일 기준 일일 시청률이 23.4%를 기록하였으며, 24부 광고가 완판 돼 104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작가와 PD가 교체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시청률 30% 고지를 쉽게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물>은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특히 훗날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는 서혜림을 연기하는 고현정에게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어리버리한 신입아나운서에서 남편을 잃고 울분을 토하는 모습까지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인물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 강태산을 연기하고 있는 차인표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근했던 권상우도 선전하고 있다. 여기에 많은 베테랑 배우들이 든든히 떠받치고 있기에 완성도 높은 극을 구성할 수 있다
<대물>의 중요한 결론은 첫 화에서 이미 제시되었기 때문에 결론보단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주요 흥밋거리다. 따라서 이후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서혜림 보단 주변 인물이다. 강태산이 조배호(박근형 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하도야(권상우 분)가 끝까지 순백의 검사로 남을지. 그리고 백성민(이순재 분)이 대통령에서 내려앉는 과정과 내려앉은 후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일지. 대중매체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아무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극은 드물다.
<대물>은 히어로물?!
24부작 <대물>은 임팩트 있는 서론을 제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 이라크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사건, 천안함 침몰사건이 연상되는 그림이 이어졌다. 지극히 의도적인 장면이다. 한순간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고 싶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신뢰성을 주고 싶었는지 아직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대물>이 아직까진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붙잡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대물>의 인기비결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네러티브한 이야기 설정에 있다. 우리가 시사 프로그램에서 접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공생하는 재계와 정계의 인사들, 정치인들의 비리와 파워게임 그리고 대한민국 수뇌부 조직들의 생리원칙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리얼하게 설정된 배경에 비해 그 속에 있는 인물은 SF에 가깝다. 강태산은 소위 이야기하는 '괜찮은 보수'다. 사리사욕보단 확고한 정치철학이 그의 원동력이다. 국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이 생각하는)옳은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와신상담한다. 여기에 국민을 위하여 직접 움직이는 대통령이나 윗선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혈 검사가 더해진다.
<대물>의 등장인물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지만, 우리가 꿈꾸는 품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암울한 현실을 타계해 줄 영웅이다. 범인(凡人)이라면 누구나 주저하게 되는 일들을 <대물>의 영웅들은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브라운관 안에서 활약하는 영웅을 바라보며 시청자는 자연스레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머릿속 윤리의식과 실제행동의 괴리감이 깊을수록 <대물>이 선사하는 쾌감의 강도는 커진다.
주인공 서혜림은 기존의 여성상을 탈피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까지 서혜림은 가정을 소중히 하며, 정계도 본인의 의지보단 강태산의 권유로 입문하게 된다. 서혜림을 좌지우지하는 인물 역시 모두 남성이다. 최근 우리에게 기존의 여성상 탈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고현정이 연기했던 미실이었다. 앞으로의 서혜림과 미실을 비교해보는 것도 제법 쏠쏠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고현정이 미실에 이어 '서혜림 신드롬'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이미지 마케팅이 정치의 왕도
강태산이 서혜림을 천거한 이유는 그녀의 정치 소양보다는 스타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그녀지만 좋은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면 정당 공천도 가능하다. <대물>의 이런 설정은 현실 정계에서도 유의하다. 도덕성이나 추구하는 정치관보다는 설정된 이미지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물>은 정치인들이 이미지 메이킹에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주는 시금석 역할을 하고 있다. <대물> 첫 회가 방영된 후, 민주당은 극중 비리정당으로 그려지는 '민우당'의 당명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성한 느낌을 준다며 유감을 표했다. 서혜림과 박근혜 의원을 비교하는 소문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현대 정치에서 대중이 경계해야 될 것 중 하나가 '프로파간다'다. 때때로 프로파간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 박근혜 의원과 서혜림의 공통분모는 성별 뿐. 하지만 서혜림의 이미지가 박근혜 의원에게 오버랩 되고 있다.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정치인에게 가상의 이미지는 어드밴티지나 독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박근혜 의원의 지지도 상승원인으로 <대물>을 꼽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촘스키의 말마따나 '모든 사실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유념하자. 현 정치판을 꼬집는 <대물>이 유세 도구로 이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민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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