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 뒤덮은 '오성홍기', 오징어 씨 말린다

중국어선 1300여 척 '싹쓸이'... 오징어, NLL 못 넘고 전멸

등록 2011.09.23 14:51수정 2011.09.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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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오징어회는 활어횟집에서 그냥 덤으로 주는 '서비스'품이었다. 일반시장에서 가장 흔한 물고기 또한 오징어였다. 그런 오징어가 왜 이렇게 구경조차 하기 힘들게 됐을까? 오징어의 생태에서부터 차근차근 원인을 캐들어가 보자.

오징어의 생태

경북 포항 구룡포수협 서정도 상무에 따르면 오징어는 한해살이 난류성 어종이다. 따뜻한 물에서 일 년만 살고 죽는다는 뜻이다. 출생지는 따뜻한 남쪽바다 제주 해역. 출생기는 겨울철이다. 그리고는 점차 성장하는 과정에 변해 가는 수온을 따라 북상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남쪽바다 물이 너무 따뜻해져 오징어 몸에 맞는 더 북쪽의 물을 찾아 자꾸 북으로 올라간다. 최종 도달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으로 판단된다.

오징어가 좋아하는 수온은 12~18℃다. 그걸 벗어나 1℃만 달라져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문가들은 바닷물 온도가 1℃ 상승할 때 어패류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물 밖에서의 10℃ 안팎 변화와 맞먹는다. 물 온도가 1℃ 높아질 때 오징어가 느끼는 변화는 기온이 20℃에서 30℃로 변할 때 사람이 느끼는 정도, 즉 봄에서 여름으로 변할 때의 차이만큼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 수역까지 갔던 오징어들은 그쪽 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남쪽으로 내려 온다. 그 과정에서 동해안을 통과하는 시기가 6~9월이다. 그리고는 태어난 제주 바다에 도달해 알을 낳고서 어미는 일생을 마친다. 경북 구간 동해 및 울릉도 오징어잡이 성수철이 6~9월인 것은 이때문이다.

오징어 어획량의 추이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오징어 어획량은 1999년에 정점을 기록했다. 1990년 7만4000t이던 것이 1991년부터 매년 20% 안팎 증가해 1999년 24만9000t까지 증가한 것이다. 그럴 때 오징어는 국내 바닷고기 전체 어획량의 30%나 차지해 수산물의 대표주자가 됐다. 그렇게 어획량이 증가한 것에는 1990년대에 도입된 새 어업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어업기술은 그 이후에도 더 발달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어군 탐지기, 자동화 시스템 등으로 첨단화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2000년부터는 어획량이 줄기 시작했다. 2000년은 22만6000t, 2010년은 15만9000t으로 내려앉았다. 작년 어획량은 어업 기술이 본격적으로 진보하기 전이던 1992년(13만6000t) 수준까지 하락한 것이다.


장비가 첨단화되고 기술이 날로 발달하는데도 오징어 어획량이 계속 감소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관계자들은 판단했다. 무엇보다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회복하기 어려운 추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다 따뜻해지는데 왜 안 올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는 수온이 계속 상승 중이다. 국내에서 수온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첫해인 1968년과 비교할 때 2010년 해수온도는 세계 평균보다 2배나 많이 상승했다. 세계 전체의 지난 100년간 해수 온도 상승폭은 평균 0.67℃에 불과하지만, 저 43년 동안 우리 해수 평균 온도는 1.5℃나 상승한 것이다.

수산과학원 한인성 박사는 우리 해수 온도 상승폭이 큰 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이라고 했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중국, 러시아, 일본에 포위된 구조이기 때문에 태평양, 대서양보다 쉽게 달궈진다는 것이다. 박사는 "작은 냄비에 비유될 만한 한반도 수역은 동일한 열에도 태평양 등 큰 바다보다 쉽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겨울철 난류 유입 강도가 강해지고 있어 앞으로도 상승세는 매우 높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계절별로도 해수 온도 변화는 다르다고 했다.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가 여름보다 겨울에 더 큰 폭으로 상승한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볼 때 명태, 도루묵, 대구 등 한류성 어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이 현상은 반대로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더 살기 좋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해에서 오징어 어장 유지 시기가 늦은 가을까지로 자꾸 연장되는 것도 그런 변화의 결과로 꼽힌다.

그런데 왜 동해에서 오징어를 보기 힘든 걸까?

관계자들은 연안에 형성되는 냉수대를 한 원인으로 들었다. 이 또한 기후변화의 부산물이지만, 그때문에 육지로부터 40km 이상씩 멀리 나가야 냉수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오징어가 지나다니게 된다고 해도 그쪽 바다라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장이 멀어지면 오징어가 잡힌다 해도 작업 효율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해수 온도 상승 이후 오징어 어장은 최근 남해와 서해로 확대되고 있다. 오징어가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인해 이동경로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동해바다 뒤덮은 중국어선

그렇지만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을 싹쓸이 하는 게 더욱 치명적인 오징어 가뭄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제난에 부닥친 북한은 연료난 때문에 자국 어선이 아예 출어를 못하자 중국에 동해 어장까지 내줘 버렸다. 중국은 종전 오징어를 거의 먹지 않았으나 최근 수요가 폭증, 안 그래도 오징어잡이가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양측은 2004년에 처음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했다. 그 기한은 2008년. 이후 양측은 2009년을 그냥 넘긴 뒤 작년에 협약을 부활시켰다. 동해에 중국 어선들이 다시 출현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에 따라 올해 경우 중국 어선들은 지난 6월 12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집중적으로 동해의 북한 해역으로 올라갔다. 속초해경이 파악한 그 숫자는 무려 1293척에 이른다. 모두 오징어 배였다. 후포수협 이철효씨는 연안에서 4~5마일만 나가면 북한으로 이동하는 중국 어선들을 육안으로도 늘 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북상한 중국 어선 규모는 사상 최대다. 2004년엔 100척, 2005년 939척, 2006년 582척, 2007년 497척, 2008년 325척, 2010년 642척이었다. 한 수협 간부는 "어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북한 해역는 오성홍기를 단 중국 배들로 빽빽하다"고 전했다.

이렇게 올라간 중국 어선들은 원산 앞바다 50마일 외측 해역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오징어를 잡는다. 올해 북상한 중국 어선들은 원산 앞바다 은덕어장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옛날부터 오징어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온 곳이다. 그리고 이들 중국 오징어배는 작년에는 9월 말쯤 모두 철수했지만 올해는 10월 말이나 돼야 철수할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오징어 어장 형성이 더뎌졌기 때문이다.

중국어선은 치명적

중국 어선이 우리 어업에 미치는 영향이 수치로 연구된 바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협은 그동안 중국 어선으로 인한 오징어잡이 손실액이 연간 200억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어민들도 "중국 어선들이 없던 2009년과 있던 다른 해의 우리 어획량을 비교하면 현격하게 차이난다"고 했다. 울릉수협 경우, 2009년 9월의 오징어 어획고는 581t(10억8000만 원어치)이었지만 중국 어선이 출현했던 2008년 9월 어획량은 45t(6천700만 원어치)밖에 안 됐다고 했다. 10억 원의 소득 감소가 발생한 셈이다.

중국 어선들의 조업 양태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상표 채낚기협회장은 "우리 어선은 보통 오후 3시에 조업을 나가 다음 날 새벽에 회항하지만 중국 어선들은 10~15척이 무리지어 이동하면서 24시간 쉬지 않고 조업한다"고 전했다

강릉수협 정기수 지도과장은 "작년까지는 중국 어선들이 원산 앞바다 은덕어장에서만 조업했지만 올해는 우리나라 NLL 근처까지 내려와 조업한다"고 환기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어선들은 서해에서 악명을 떨치던 쌍끌이를 동해에까지 도입, 오징어를 씨까지 말리고 있다고 했다. 울릉도 한 어민은 "현재 북한 수역에서는 2척이 한 조를 이룬 쌍끌이 800~1000척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NLL까지 오르내리면서 쌍끌이 조업을 하기 때문에 오징어뿐 아니라 다른 회유성 어종들까지 모조리 씨를 말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장을 뺏긴 것으로도 모자라 우리 동해안 어선들은 기름값 부담 때문에 남해·서해 조업조차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어선용 면세 경유 가격이 작년 4월 1드럼(200ℓ)당 13만6000원에서 올 4월에는 18만3000원으로 4만7000원씩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어민들에 따르면 구룡포항에서 남해까지 한 번 갔다오려면 기름이 평균 10드럼(2000ℓ) 든다. 멀리 이동해야 하는 데다 집어등을 밝히기 위해 발전기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모터도 기름을 적잖게 먹는다.

그렇지만 고기만 많이 잡히면 걱정이 있을리 없다. 지난해에는 남해로 한번 출항하면 오징어를 3000마리 정도 잡을 수 있었다. 그걸 팔면 평균 500만 원의 수입이 생기고, 기름값과 선원 15명의 조업비, 식비·수리비·보험료 등을 제하고도 55만 원 이상을 순수익으로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까딱 그 많은 비용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20t짜리 어선에 선원 7명이 타고 하루 조업하려면 기름값, 인건비, 식비, 어업도구비 등 하루 100만 원이 든다. 3박 4일 멀리 나가면 하루 비용이 600만~700만 원으로 상승한다. 허탕치기 십상인데 이 비용을 어떻게 감히 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오징어 #포항 #구룡포 #울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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