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리랑 흑미가 좋았다

30년 전 헤어진 친구 메리에게서 폭력 학생을 생각하다

등록 2012.01.17 11:05수정 2012.01.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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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달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무슨 잡곡타령도 아니고…. '보리'와 '흑미'는 수목원에 찾아든 강아지들 이름이였다. 지난해 8월, 어느날부터 수목원에 큰 개 두 마리와 작은 강아지 세 마리가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강아지 가족'인 듯한 구성이였다. 더구나 한 마리는 누렁개고, 한 마리는 검정개였다. 새끼들은 누렁이 두 마리에 검정개가 한 마리. 누가 봐도 정말 가족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수목원이다. 관람객들에게 사고라도 나면 큰 일이었고, 꽃사슴도 아닌 개들이 이곳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였다. 잡아야 했다. 며칠을 고생한 끝에 잡힌 것은 검정개 한 마리와 누렁이 한 마리. 나머지 개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이렇게 한 가족을 절단냈다. 며칠을 기다려도 부모들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더 난감한 일이 생겼다. 잡힌 강아지 두 마리는 새로운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너무 어린 강아지를 유기할 수는 없었다. 할수 없이 구석진 곳에 급하게 마련한 개집에서 강아지를 돌봐야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20~30대 젊은 아가씨들은 그 강아지들을 참 이뻐했다. 이른바 '똥개'치곤 정말 이쁘긴 했다. 검정개는 숫놈이고 누렁개는 암놈이였는데, 쌍거풀과 속눈썹이 진한 예쁜 강아지였다. 그렇게 '흑미'와 '보리'가 우리 옆에 왔다.

마흔을 넘긴 내게도 개에 관한 추억이 있다. 강원도 문막 어느 시골 마을에서 10살이 되던 해까지 살다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됐다. 방 한 칸 얻어서 이사 가는 형편에 개는 안될 일이었다. 누렁개 '메리'가 문제였다.  특히 나에게는 정말 큰 문제였다.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메리'를 주기로 결정하셨다.

'메리'는 3대째 우리집에 살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가 기르던 개의 손자쯤 되겠지! 학교 앞에 마중나오고, 교회 앞에서 내가 나오길 기다리던 '메리'는 동네 아저씨의 '식사'가 됐다. 개집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메리'는 이별을 직감했나 보다. 눈물이 맺힌 채 끌려가면서 '메리'는 나를 계속 봤지만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심한 감기와 고열로 앓아 누웠지만, 왜 아픈줄 몰랐던 것 같다. 난 지금도 집에서 애완견이든 뭐든간에 어떤 짐승도 기르지 않는다. 싫다. 내 집에서 생명이 죽는 게 싫다. 또 지켜주지 못할까봐 싫다.


생명은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달린 듯하다

'흑미'와 '보리'를 가끔씩 힐끔힐끔 봤지만 정을 주진 않았다. 젊은 아가씨들은 밥을 챙겨주었고 예방 접종도 해줬다. 난 가끔 너무 지저분한 개집을 청소해 줬다. 변도 치우고 장난감도 하나 넣어줬다. 한달이 지나고 '보리'와 '흑미'는 어느 노부부에게 입양됐다. 애완견이 아니니 상팔자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누군가의 '식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며 보냈다. 30년 전, 내 친구 '메리'에게 너를 가끔 생각하고 잇다고, 잊지 않았다고, 믿어 달라고,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생명은 생명자체로도 소중하지만,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준에 달린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소중한 가족이고 친구지만 누군가에겐 한끼 식사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자식이 누군가에겐 괴롭히고 즐기는 놀잇감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의 의미를 논하는 것은 과한 듯하다. 그러나 생명을 꼭 얘기하고 싶다. 내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고 있는지, 또 너무 약하게 키우는 것은 아닌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길 바라며 근본적인 문제로 아이들을 보고 싶다. 요새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에 관핸 가해 학생들도 오랫동안 아파했던 친구들 기억에 힘들 것이다. 그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신입생이 되고, 신병이 되고, 신입사원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명예퇴직도 할 것이다.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힘들어할 것이다. 아마 그 아이들은 그때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혼자로는 힘들다는 것을. 이것을 아이들에게 빨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생명의 의미를 논하는것은 사족인 듯하다. 그러나 생명을 꼭 얘기하고 싶다. 의미를 부여받은 생명은 풀 한 포기도, 돌멩이 하나도 쉽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평생을 기억에 남을 친구가 아니던가.


덧붙이는 글 생명의 의미를 논하는것은 사족인 듯하다. 그러나 생명을 꼭 얘기하고 싶다. 의미를 부여받은 생명은 풀 한 포기도, 돌멩이 하나도 쉽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평생을 기억에 남을 친구가 아니던가.
#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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