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남소연
적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모든 전략의 첫 단추다. 지금 대선을 앞둔 민주진보 진영의 적은 누구일까? 상업적 독재의 모습을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일까? 원조 개발독재를 떠오르게 하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일까?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저자는 적을 먼저 규정하는데, 특정인이 아닌, '특권과두체제'를 지목했다. 다소 난해하게 들릴 수 있는 '특권과두체제'에 대해 고원은 '재벌, 글로벌 금융자본과 금융엘리트, 정치엘리트, 엘리트 관료, 수구언론, 전문가 엘리트들로서 거대한 특권과 이익을 매개로 연결된 폐쇄적 네트워크'라고 파악한다. 1% 기득권의 탐욕의 카르텔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고원은 이 특권적 지배 카르텔이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끊임없이 증식을 거듭해, 민주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와서 완결적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설명에 근거해서 보면, 이 부분에서 현재의 우리 정치가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즉 하나는 현재 논쟁 중인 신자유주의, 복지주의, 공평주의, 선진화담론 등 다양한 이념노선에 대한 논쟁에 앞서, 이 사회의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는 '권력실체'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민주정부가 특권과두세력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했고, 만일 그것이 민주정부의 실패와 연관되어 있다면 2012년 체제에서 민주진보세력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두운 징조가 되고 있는 이들 '훈구귀족' 세력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과거 집권세력이었고 차후에도 집권의 중심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은 민주통합당 안팎의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당신들은 이 특권과두체제 안에 있을 것이냐, 아니면 밖에서 싸울 것이냐?'를 묻는 것이다. 이 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두 지도자의 아우라에 기대어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의 과민반응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민주진보 진영의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 저자는 이들 특권과두세력이 김영삼 정부에 이은 민주정부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노선의 확산과 더불어 빠르게 증식을 거듭해해 온 점에 주목하고, 민주진보진영이 특권지배에 대한 명확한 성찰과 대응 없이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진보 진영 내부에는 과거 민주정부는 물론 민주통합당의 '진심'을 믿을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하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출세했을까? 또 어떻게 저런 법안이 통과되었을까 하는 모든 의문은 바로 이들 '특권과두체제'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 속에서만 풀릴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민주화 세력이 민주진보 진영 내부에서 '민주화 귀족'으로 기득권화 되는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는 현재 우리 사회 여론이 산업화 귀족과 민주화 귀족이 나란히 특권을 누린 것에 대한 분노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연결된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즉 이 같은 흐름이 제도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배설과 자위의 성격이 강한 정치연예 프로그램으로 대중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가뭄에 단비를 내리는 '레인 메이커'를 기다리듯이 외부의 인물을 선호하는 구세주 신드롬을 현실 정치에 확산시켰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② 우리는 좌파인가?] 헌법의 이념적 위치와 '사회시장경제' 노선 '나는 좌파가 아니다'라는 언술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패러독스이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를 우파라고 지칭하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호명에 별 수 없이 대답하는 우울한 자기검열의 흔적은 그야말로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모든 이들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우리 사회의 억압적 관행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문화적 권력으로부터 개혁적 유권자는 물론, 정치인 또는 지식인들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권 밖에서 정치에 진입하려 하거나, 중도적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언술이 바로 '나는 좌도 우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같은 중도가 몰가치성으로 나타나, '가치'에 기반을 둔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하지 못하는 무능으로 작동되거나, 일부 기회주의자들이 특권과두세력과의 우호적 관계유지를 위한 훌륭한 위장망로 쓰인다는 데 있다. 그러나 '가치'를 건너뛰고 정치를 얘기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 책의 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제2부에서 '가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린다. 이념에서 벗어난 정치를 얘기하는 순수하거나 순진한 사람들에게, 당장 헌법 자체가 공동체의 이념적 틀임을 '자상하게' 강조한다. 특히 미국보다는 왼쪽,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 헌법보다는 오른 쪽에 있는 우리 헌법의 이념적, 이데올로기적 위치에 대해 설명한다. 즉 좀 더 고약스럽게 단순화 시키자면 미국식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얘기하는 사람은 위헌적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헌법이 가지는 진보적 정체성에 대한 설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민주진보정부가 도대체 어떤 노선과 이념을 택할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시장경제'다.
'사회시장경제'는 이 책의 중심의제다. 저자는 사회시장경제를 '민주적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끌어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헌법이 가지는 '사회권'과 관련된 개념을 설명하면서, 헌법이 담고 있는 사회주의적 요소에 대한 적극적인 정치적 수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루즈벨트가 상당한 진통에도 결국 반독점권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요소를 정치적으로 적용해, 정의롭지 못한 독점에 의해 쇠약해져가던 '시장'을 살렸다는 평가를 상기시킨다.
저자는 '시장'의 지반을 결코 벗어나지 않지만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오히려 시장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론적,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웬 탁상공론이냐?'고 반문해서는 안 된다. 그의 사회시장경제론은 우리에게 이념적으로 곤혹스러운 '예', '아니오'의 답변을 요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 중 어느 쪽이 더 우선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민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은 어느 쪽이 우선하는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으로 수렴될 수 있다.
사실 '당신'이 지금 분노해서 외치는 얘기들은 사회주의자의 주장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해소하려면 사회주의적 요소의 도입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당장 장하준 교수가 최근 언급한 주장, 즉 '국민이 원한다면 삼성생명을 국유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롤스 등의 소유민주주의 개념 등을 설명하며 민주주의의 강력한 우위를 주장한다. 또 그 같은 강력한 민주주의 노선에 기반을 둔 19대 국회에서 논점이 될 만한 주요 정책의제와 전략을 상세히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