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맨이 남긴 후유증... 당신도 경험하고 있나

화학적 거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등록 2012.06.19 14:59수정 2012.06.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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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인 성문화에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도 바바리맨이 있다고 하니, 지구상 어디에서도 바바리맨과 마주칠 위험성은 존재하는 듯하다. 성에 대한 개방적 문화와 대중매체에 의한 성 노출 수위가 높아져서일까. 우리 사회에서 성문제는 점차 관대하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져 바바리맨은 이제 친근하고 희화된 이미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성범죄의 심각성에서 드러나듯이 성범죄자들의 이상행동과 상습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범죄자들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바바리맨의 행태를 진지하게 주목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지난 기사("만약 당신이 산에서 바바리맨을 만난다면...")에서는 실제 바바리맨과 마주친 여성들의 두려움과 당혹감을 좀 더 현실감있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바바리맨에 의한 피해의 심각성과 성범죄 사례들을 통해 그들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다.   
 
바바리맨 최초 목격 시기 19세 미만이 50%

2010년 여성가족부의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를 통해 성인 여성의 성폭력 피해경험을 살펴보면, 지난 1년간 성기노출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2.7%이고, 평생 1회 이상 성기노출 피해를 경험하는 여성은 3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회 미만 피해를 경험한 여성이 88.5%, 6회 이상인 경우도 6.5%나 됐다. 다시 말해, 여성 100명당 약 35명이 평생 1회 이상 바바리맨을 목격하게 되며, 이들의 피해가 단 1회로 끝나지 않고 대다수 여러 차례 바바리맨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성기노출을 처음 목격하게 된 시기이다. 19세 미만에 처음 목격한 여성이 56.5%, 남성은 45.5%로 아동·청소년 시기에 바바리맨의 성기노출을 처음 목격하는 경우가 무려 50%에 달한다. 바바리맨을 경험한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이미 아동청소년기부터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아동청소년기 가운데에서도 중학생의 피해율이 7.9%로 가장 높았는데, 초등학생의 피해율 1.7%와 합한다면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피해율은 약 10% 가까이 될 정도로 저연령층의 성기노출 피해율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바바리맨의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생각보다 큰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들은 불안 신경증, 남성이나 성관계에 대한 혐오 등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하며, 상당수는 불쾌감이나 분노 등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증후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더구나 아직 성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잡히지 않은 아동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목격하게 된 바바리맨의 음란행위가 그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행동, 그리고 삶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바바리맨 피해, 남자는 안전한가

실제 바바리맨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는 주변의 남성들이 거의 없음에도 성폭력 피해조사를 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성기노출행위는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행동으로 알려져왔으나 실제 조사결과에서는 남성들의 성기노출 피해율이 여성의 1/3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아동 청소년들의 경우 여학생 못지 않게 남학생들의 피해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19세 미만 아동 청소년들이 지난 1년간 경험한 성폭력 가운데 성기노출에 의한 피해율은  여학생 4.7%, 남학생 5.5%로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심지어 더 많은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동 청소년들이 평생동안 성기노출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여학생의 경우 6.7%, 남학생의 경우도 5.9%나 차지하고 있다. 19세 미만 여학생 100명당 약 7명, 남학생 100명당 약 6명이 그동안 1회 이상 바바리맨을 목격했다는 말이다. 

성인들이 평생동안 성기노출 피해를 경험한 횟수로 살펴봤을 때, 5회 미만인 남성도 무려 72.5%로 나타나, 바바리맨 피해를 당한 상당수의 성인 남성들도 어쩌다 한번 마주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바리맨은 여성들 앞에만 나타난다'라는 통념과는 달리, 남자 아동청소년들의 경우 여성만큼이나 바바리맨의 범행표적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어린시절부터 바바리맨에 의한 피해를 경험한 남성들도 상당수 있음을 가늠케 한다.


그들은 정말 위험하지 않은 자들인가

바바리맨에 의한 피해의 심각성이 이 정도에 이르렀지만,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그동안 경찰에 체포된 바바리맨 중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회사원, 공기업 간부, 시청 공무원, 심지어 교도관에 교사까지도 포함돼 있으나, 이들을 성범죄자로 인식하기 보다는 '평범하나, 소심하고 성적으로 무능하여 어쩌다가 이상한 행동을 한 한심한 인간' 정도로 치부돼 대다수는 훈방이나 벌금 정도에 그치고 만다.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혹여 직장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바바리맨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된 전력을 가진 한 초등학교 기능직 공무원이 최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보발령이 나 논란이 발생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들은 그저 '소심하고 성적으로 무능하기까지 한 불쌍하고 한심하리만치 지질한 남자'에 불과한 것일까? 또한 한 사람의 가정과 인생을 위해서 그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것이 과연 그에게 보탬이 되는 것일까.

 브렛 카 <노출증>
브렛 카 <노출증>이제이북스
바바리맨은 보통 장기간 노출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에, 정신의학적으로 '변태성욕' 또는 '성도착증'의 일종인 '노출증'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즉 바바리맨의 상당수는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노출증' 환자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심리치료학자인 브렛 카(Brett Kahr)의 저서 <노출증>에 따르면, 노출증 환자의 95%는 관음증, 소아기호증, 가학증, 스토킹 등 다른 유형의 성도착증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근친상간, 강간 등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노출증 환자의 32%가 심각한 성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고, 이들 중 64%는 성기노출을 하고 나서 강간 등의 성범죄를 시도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상습적 바바리맨이 장기간에 걸쳐 수 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바리맨 성범죄 사례
사례 1(2010년 4월 발생 / 뉴시스 보도)
20대 A씨는 여중생을 성추행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돼 전자발찌를 벗은 지 한 달만에 또 다른 여중생을 강제추행하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끼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고 여중생의 뒤를 쫓아가며 음란행위를 하였으며, 여중생의 집안까지 들어가 강제추행하려다 피해자가 소리쳐 달아났으나 촬영된 CCTV로 인해 검거됐다. 범인은 검거 이전에도 여중생들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등 '노출증'을 보이는데다 알코올 남용으로 자발적인 행동 억제력이 부족하고, 범행수법이 날로 치밀하고 대담해져 재범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점이 인정되어 징역 2년에 전자발찌 10년 착용을 선고받았다.

사례 2(2011년 2월 발생 / 국민일보 보도)
30대 B씨는 약 5개월 동안 19차례에 걸쳐 은평구 수색동 일대에서 교복 차림의 여자 중고등학생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였으며, 같은 기간 길을 가던 여자의 몸을 강제로 더듬어 세 차례 추행하고 도망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강간죄로 3년 복역하다 지난해 4월 만기출소한 성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례 3(2010년 7월 발생 / 연합뉴스 보도)
30대 C씨는 인터넷 화상채팅을 통해 10대 여성 수백 명에게 자위행위 동영상을 보여준 혐의로 수개월 전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으나 피해자들과 합의 후 처벌을 면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최근 2개월간 60여 명의 여성들에게 자위행위를 하며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건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그는 근무시간에도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 하루에 수 차례씩 영상통화를 걸었으며, 경찰의 조사를 받던 기간 중에도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10대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관음증'까지 보여 불구속 입건됐다.


어릴 적부터 동성애에 대한 환상과 성적 쾌락을 갈구하다가 결국 17명의 남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강간, 훼손, 섭취하는 등 미국의 악명높은 연쇄살인마가 된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의 경우도 그의 범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성기노출이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성기노출 등 음란행위가 더 심각한 성범죄로 발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독일 법의학자 미하엘 바워만(Michael C. Baurmann) 박사는 "성기 노출행위는 명백한 성폭력"이며 "이러한 행위는 강간이나 강간살인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법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화학적 거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심리학자 및 정신분석학자들은 대부분의 노출증환자들이 성장기를 통해 성에 대해 심한 억압을 받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성기노출이라는 돌발적이고 통제불능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어린시절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한 뒤 성장하면서 성도착증을 갖게 되거나 성폭력을 저지르게 되는 성범죄자들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결국,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처나 충격적인 경험이 비정상적인 성적 환상과 함께 성적 일탈행위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이러한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찾아서 고치려는 생각이나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고, 때로 술을 마시면 좀 더 심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리화할 뿐이다. 여기에 약자에 대한 성적 폭력행위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음주문화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의 행위를 더욱 쉽게 무마시키고 재발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악랄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나서야 자신의 성적 취향이 '중증 성도착증'으로 악화됐음을 확인하게 되고, 그제서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제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고민한들 그것이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잇따른 아동성범죄사건을 막기 위한 정부의 특단의 조치로써 성도착증이 있는 상습 아동성폭력범에 대한 '화학적 거세법' 이 발효됐음에도 이로 인해 아동성범죄로부터 안전해지리라는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는 이와 같은 제도적 한계가 상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자들에 대한 화학적 거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상습적인 성기노출 행위도 명백한 성폭력으로써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 규정을 강화하고, 이러한 공공연한 성적 일탈행위가 심각한 성범죄로 발전될 수 있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경찰에 체포된 순간부터 조기에 정밀한 상담과 진단을 통해 장기적으로 치료·교정할 수 있는 사회예방적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견고하게 갖추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 그들을 비정상적인 주변인으로 방치해 그들로 인한 피해 자체를 묵인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고, 그들이 건전한 구성원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부여가 가능한 사회 시스템속에서 그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미리 치료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엄중한 처벌과 사회적 책임을 감수할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바리맨 #노출증 #화학적 거세 #성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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