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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몽골 공정여행기①] 고대의 그림자 드리운 잔장성(殘長城)

등록 2012.08.31 16:07수정 2012.08.3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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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 속에 피어난 풍경이 가쁘게 다가왔다. 대륙의 장쾌한 산세로 들어서며 비로소 이역(異域)에 왔음을 절감한다. 잔장성(残長城), 그러니까 광대한 만리장성의 뒷모습을 보는 일. 우리의 여행은 애초 변방에서 시작했다. 겹겹의 산봉우리에 앉은 부서지고 낡은 산성은 대자연의 일부처럼 질박했고, 찾아온 이들도 몇 사람 되지 않는 성은 과거라기보다 차라리 미래에 가까웠다. 시간이 갈수록 성채는 사라질 것이고 잔해만 남아 철 지난 영광을 겨우 증명하리라. 무너져 가는 고대의 성을 사방에서 복원했지만 그럴수록 실체와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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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장성 팔달령 만리장성의 서쪽이다. 복원하지 않은 고대의 성에서 장성의 다른 표정을 본다. ⓒ 장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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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장성 위용 있는 대륙의 산. 태초 골산(骨山)이었으나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가 산체마저 바꿨다. 구름 그림자가 짙게 가라 앉으며 오후를 알린다. ⓒ 장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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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장성 만리장성 거용관 구간과 달리 찾는 이들이 적어 호젓하다. 돌틈에 웃자란 잔풀이 이 성의 연륜을 말한다. ⓒ 장보영


만리장성에 인파가 몰려 사람장성이 됐다는데, 기실 그 거대함은 눈치도 못 채고 일행은 이곳부터 와 버렸다. 폐허로 남은 석협관(石峡关)은 명나라 말에 농민 반군 지도자 이자성이 군대를 끌고 북경을 공략할 때 관문으로 삼았던 곳이다.


지역노인들의 권고 덕에 이자성은 대국의 허를 찔렀다. 북경시내에서 서쪽으로 70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이 뚫리면서 명나라는 무너졌다.

"이곳을 쭉 따라가면 곧바로 베이징입네다."

손 뻗어 하나의 소실점을 가리키던 정군(26세, 조선족 통역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비죽이 솟은 산과 산 사이로 골짜기 하나가 길게 누워 있다. 밑도 없이 뻗어가는 골짜기는 전설처럼 비좁고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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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참가자 잔장성 성곽에서 남긴 내몽골 공정여행팀 단체. 동료, 연인, 부부, 친구, 가족 등 얼굴 만큼 다채로운 사연들이 모였다. ⓒ 장보영


중국 속 작은 몽골, 타이부스치 초원을 향해

공정(公正)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객체는 두 개여야만 한다. 너와 나, 우리가 한쪽으로의 치우침 없이 같은 무게와 부피로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 중력에 기댄다면 깨지고 마는 이 공식을 풀어내려면 조금은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함께 진을 꾸린 이번 참가자들은 대개 일탈의 기한이 정해져 있는 시한부 여행자. 주어진 시간을 있는 힘껏 체화해야 했다. 그리하여 이들이 택한 것이 바로 공정여행.


그것은 단순히 한 나라의 광휘를 적당히 둘러보고 돌아오는 관광(觀光)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섬광 같은 한 순간일지라도 몸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에게 눈을 떼서는 안 됐다. 나를 줄이고 바람이 되어 너를 헤매는 일. 함부로 동화될 수는 없지만 쉽게 아는 체 해서도 안 되는 일. 그저 가만히 짐작만하며 너의 자리를 더듬어 보는 일. 하여, 너와 나는 응당 같은 버스를 탔고 같은 음식을 먹었고 같은 술을 마시며 같은 잠자리에 들었다. 북경시를 벗어난 버스는 반나절을 내리 달려 하북성 북부에 닿았다. 또 다른 성(省)을 목전에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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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북부 베이징에서 벗어나 5시간만에 도착한 하북성 북부. 내몽골을 접경에 둔다. 목축과 농경을 겸한 한족(漢族)의 모습이 왕왕 보인다. ⓒ 장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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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북부 대륙의 거대한 묏부리들은 바람에 밀려 어느새 사라졌다. 대초원을 예감케 하는 하늘이 청아하다. 젖소와 말, 양, 개와 같은 가축이 구분 없이 한데 다닌다. ⓒ 장보영


중국 속 작은 몽골, 내몽골은 북경에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중국 북부의 국경지대다. 북동쪽의 외몽골, 러시아와의 접경선이 무려 4220킬로미터에 달하니 경계와 이국로서의 맛과 색채가 유별나며 말과 소, 양이 달리는 망막한 초원에 서면 누구라도 한계를 잊고 영원 속을 달리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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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관문 북경을 벗어난 지 반나절만에 하북성과 내몽골을 가르는 관문에 선다. 톨게이트 구실을 하는 곳으로 약간의 통행료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농협에 해당하는 중국의 금융기관 '농촌신용사' 간판이 눈에 크게 띈다. ⓒ 장보영


신강위구르자치구와 서장자치구에 이어 그 면적이 중국에서 세번째로 넓은 내몽골. 그러나 이곳에 열 사람이 산다고 가정할 때 한족이 여덟 명이라면 몽골족은 두 명도 채 안 된다. 이미 한족의 땅인 셈.

서장자치구에 사는 장족이 90퍼센트임을 감안한다면 실소할 만한 노릇이다. 그러나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 중국은 아닌, 또한 독립한 외몽골과는 같은 듯 다르기에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리라 생각하니 굳었던 가슴이 뛰었다. 저녁 여섯시, 다 저문 석양 아래 내몽골로 들어가는 관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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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성 북부 저물녘 석양 아래 내몽골에 들어선다. 하루 농사를 다 짓고 귀가하는 이에게 위로의 빛 한줄기를. ⓒ 장보영

덧붙이는 글 | 2012년 8월 4일부터 8일까지 국제민주연대와 함께한 내몽골 공정여행입니다.


덧붙이는 글 2012년 8월 4일부터 8일까지 국제민주연대와 함께한 내몽골 공정여행입니다.
#내몽골 #공정여행 #북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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