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해서 아기가 아닌 빚을 낳았다

[공모-나는 세입자] 예정된 주거비 지출은 저출산문제를 크게 키울 뿐

등록 2012.09.28 10:08수정 2012.09.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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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우리는 돈 모아서 결혼하나, 결혼해서 돈 모으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살림이었지만 반지하 단칸방에서 옷에 곰팡이가 피어도, 땅 위를 흐르던 빗물이 현관문 틈으로 흘러들어와도, 낮에도 전등불을 끄면 한밤중이 되어 버리는 그런 환경에서도, 우린 같은 곳을 바라보며 행복해 했다.

반지하의 결로 현상 때문에 방안 가득 핀 곰팡이 자국을 보고 이사 나가던 우리에게 도배값을 물어주고 가라고 우기던 주인 아줌마와 작별하고 드디어 반지하 월셋방을 탈출해 지상의 '전세'로 이사했다.

곰팡이 핀 반지하셋방 탈출, 그러나...

 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JK FILM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이사한 그 집은 천국 같았다. 월세를 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아침엔 뜨거운 태양이 거실창을 뚫고 들어왔다. 새 침대의 스프링 울리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스프링 소리에 익숙해질 무렵 어느날, 이부자리에 누워 비를 맞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바로... 천정에서 비가 새는 것이었다. 그때의 황당함이란.

건물이 낡아서 여기저기 균열이 생긴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신랑과 내가 함께 손수 도배질을 한 벽지들도 빗물을 머금고 곰팡이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조만간 꼭 방수공사를 해주겠노라 하셨지만 결국 그 상태로 여름 장마를 보냈다. 내 집을 가지지 않은 이상, 엄청난 주거비를 지출하거나 그게 아니면 열악한 주거환경을 택해야 한다.

부모님이 "내집 마련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깨달았다.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인과 실랑이를 해야 하거나 참는 수밖에 없고, 내 집이 아니니 언제 이사를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집에 맞는 가구를 사는 것도 망설여졌다. 이 집에 맞는 커튼을 구입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명확하지만 너무 거대했다. 집을 사기 위한 돈을 모으기 이전에 무리하게 받은 전세 대출 빚부터 빨리 갚아야 했다. 따라서 나는 구두쇠가 되었다.


비자발적 구두쇠는 불행했다

 가운데 보이는 길음뉴타운 3단지 임대아파트 왼쪽이 임대아파트로 연결되는 차량 출입문이다. 오른쪽이 일반분양 아파트 출입문.
가운데 보이는 길음뉴타운 3단지 임대아파트 왼쪽이 임대아파트로 연결되는 차량 출입문이다. 오른쪽이 일반분양 아파트 출입문.권우성

점심 식대비가 아까워서 매일 아침마다 신랑과 나의 점심 도시락을 쌌다. 옷을 사거나 집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살 때도 돈이 아까웠다. 매일 가계부를 쓸 때마다 막을 수 없는 지출 항목 하나하나에도 내 모든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친구를 만나면 친구의 세련된 모습에 주눅들었다.


어느날 퇴근길에 언니의 생일선물을 사러 서현역에 갔다. 원래 알던 대로 그곳엔 젊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내 나이 또래의 아가씨들이 곱게 차려입고 쇼핑을 즐기는가 하면,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들, 풋풋한 커플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현재 즐길 수 있는 값비싼 행복을 미래로 미루어 왔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임대아파트의 신청조건으로는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월소득 조건이 정해져 있다. 맞벌이의 비율이 높은 이 시점에, 맞벌이의 평균 월소득으로는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가 없다. 주거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존재하는 국민임대아파트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회사일을 그만두고 당장 아이를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빚이 조금 있더라도 내집 마련을 한 후에(주거비 지출을 줄인 후에) 아이를 가져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내나이 스물여섯이니, 한 5년만 더 모으면 될까? 신랑의 회사 동료가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산선물을 사러 아기용품 매장을 배회하던 중 아기를 안고 쇼핑 온 엄마들의 표정을 봤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엄지뉴스

하나 같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들. 나도 아이를 가지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대출 이자는 매월 20만 원에 육박하고, 대출금에 대한 부담도 크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육아비용 부담을 안고 가기에 지금은 너무 섣부르다. 나는 요즘도 꿈꾼다. 예쁜 아기를 신랑과 함께 껴안고 웃는 것이 현실이 되길.

결혼함과 동시에 나의 모든 고민은 '집'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나와 신랑이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일찍 내집 마련을 했다면? 그 돈의 출처는 분명하다. 부모님도 평생 피땀으로 모으고 지켜낸 돈이기에 그 돈도 내가 모은 돈만큼이나 소중한 돈이다. 더구나 이 시대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부모님께 손벌리기'를 하는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평균적으로 서울에 내집 마련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12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 빚을 안고 시작한 시대의 청년들은 결혼하기까지 결혼비용도 모아야 하고, 아이를 태우고 다닐 차 한대쯤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집 마련의 실현은 더 늦어질 수밖에. 불투명한 경제상황 속에서 엄청난 지출을 예고하는 출산은 더욱 더 기피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내집마련 #저출산 #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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