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외곽, 싸구려 삼층집에서의 생활

[공모- 나는 세입자다] 부엌에 자주 출몰하던 쥐들과 친해진 사연

등록 2012.09.29 14:51수정 2012.10.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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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히 자는 룸메이트가 깰까, 얼른 알람을 끄고 일어나면 천장에 '쿵' 하고 머리를 찢곤 했다.


런던 외곽, 위험하다고 소문난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 거의 모든 관광지들이 위치하는 런던의 최 중심부 1존으로부터 여섯 번 멀어져 6존에 속하는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곳. 봉급이 제대로 나가지 않는지 몇 달에 한 번씩 선생님이 바뀌던 값 싼 영어 코스를 등록하고 학교의 소개로 싼 맛에 들어간 집이었다.

 밤늦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 처음엔 무섭기만 했다.
밤늦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 처음엔 무섭기만 했다.김지수

층별로 두 개씩, 총 여섯 개의 방에 층마다 부엌이 있고 두 개의 화장실이 있는 3층 꼭대기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지붕 모양으로 기울어진 천장에 날마다 머리를 찌었지만, 1분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5분 거리에 대형 마트가 있어 가격에 비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타지생활의 낭만에 젖어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다.

그런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가격이 싼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며칠 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던 인터넷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결이 되지 않았고, 일이주 안에 끝난다던 삼층 화장실 공사는 무려 3개월 동안 계속됐다. 무려 열두 명이 화장실 한 개로 삼 개월을 버틴 것이다. 대부분이 유럽인이던 하우스메이트들은 방세를 받으러 올 때마다 '곧 끝나, Trust me'로 일관하던 관리인의 넉살에 넘어가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자율에 맡겨진 화장실과 부엌 청소는 거의 내버려진 상태. 소문엔 부엌에 쥐가 산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작은 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던 룸메이트를 피해 부엌으로 노트북을 들고 나와 추위에 떨며 열심히 한국 드라마를 챙겨 보던 바로 그 날.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그들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싱크대 밑의 작은 구멍으로 재빠르게 숨는 쥐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한동안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다. 어두운 동네 쥐가 출몰하는 싸구려 삼층집에 적응하다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다. 어두운 동네 쥐가 출몰하는 싸구려 삼층집에 적응하다 라따뚜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거의 매일 밤 부엌에서 컴퓨터를 하던 나는 꽤나 자주 그들을 발견했고, 나중에는 조그만 몸집에 안쓰러움을 느끼고 먹이를 주며 키워볼까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어릴적 잠시 키우던 햄스터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위험하다는 소문에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걷던 골목길은 곧 익숙해졌고, 무섭게 느껴지던 거대한 몸집의 흑인들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보통 사람들일 뿐이었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서울 곳곳에 연결된 깔끔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은 한국의 자랑이며,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저렴한 전기세와 수도세, 공공기관의 빠른 일처리… 하지만 한국인들은 언제나 '더 빨리, 더 싸게'를 외친다. 비록 스스로 세운 높은 기준에 비해 현실이 시궁창일지라도, 잠시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몇 달간 화장실 하나로 열두 명이 버텨도, 부엌에 쥐가 나와도 항의하지 않는 그 때 그 하우스메이트들의 게으름이 때로는 부럽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성공하고 나서는 해볼 수 없는 가난한 타지생활의 낭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나는 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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