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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
나는 서울에 사는 세입자다. 서울 서쪽 강변 동네에서 월세 반지하 집에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의 집으로 2004년에 이사 왔고, 올해까지 햇수로 9년째 사는 중이다. 그런데 보증금은 그대로이고 월세는 5만원씩 달랑 2번, 그러니까 9년 동안 전부 해서 월세만 10만원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복 받은 세입자다. 이런 사정을 듣게 되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고, 나 또한 이런 주인을 만나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 집을 소유하게 될 전망이 매우 희미한 사람이다. 집을 갖고 싶은 욕망이나, 집이 없으면 안 되는 필요나, 가장 중요하게는 집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능력이 현재 없으며, 앞으로도 좀처럼 생길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주변에는 역시나 세입자인 지인들이 많이 있다. 집주인이 막무가내로 턱없이 많은 보증금 인상을 요구해 올 때라든가 집주인과의 불화로 이사를 해야 하게 되었다든가 하는 때, 그들이 이를 악물고 내 집을 갖고 싶다고 한탄하는 모습에는 깊이 공감한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삿짐을 싸고 푸는 번거로움의 문제가 아니다. 못 가진 측이 항상 불합리와 비인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관습과, 그것이 당연하게 정착된 구조에서는 주인복 터진 나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어도 서울에서는, 돈을 척척 쌓아가며 살 수 없는 세입자들은 이사할 때마다 점점 주거환경이 열악해져야 한다. 방이 작아지거나 옥상 꼭대기로 올라가거나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결국은 서울에서 계속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낙향하거나. 그렇게 나의 동네 친구들도 이 동네를 떠났다.
동네 친구가 떠나는 쓸쓸함에도 나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사는 게 좋았고 오래도록 살고 싶었다. 그러나 애초에 처음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만 해도 반지하 집은 안중에 두지 않았었다. 내게 있어 햇볕을 쬐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방이 작은 건 참아도 햇볕이 막히는 것은 참을 의향이 없다.
게다가 티비에서 자주 보듯 내 창문 밖으로 다른 사람들의 다리가 오락가락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반지하방이 햇볕 가득 품으면서도 공용공간으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복덕방 아저씨가 마지막 운운 하며 보여준 집에서 나는 원래 세웠던 원칙을 다 잊고 냉큼 계약을 마쳐버렸다. 커다란 창문 오케이, 대낮의 광량 오케이, 게다가 비록 풀 한포기 없는 시멘트 바닥이긴 해도, 자그마한 마당까지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더욱 마음에 들게 되었던 것은 동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고양이에게 호의적이라는 점도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마당에 고양이 사료를 놓아두어서 길고양이 가족이 모여드는 것에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고양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누가 누구 새끼이고 하는 것까지 파악하더니, 어느 날은 "나도 고양이를 길러보고 싶네"라는 말씀을 할 정도였다.
나는 아주머니가 방세를 왕창 올려서 나를 내쫒는 일이 없는 한 여기서 가능한 오래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이 다세대주택의 다른 세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가 사는 동안 한 번도 이삿짐 트럭이 오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외출한 사이에 이사를 했거나 아니면 이사하지 않고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9년 동안 딱 한 번 매우 진지하게 이 집에서 이사를 나가야 할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분위기와 내 인연인 길고양이들보다도 앞서서, 내가 이곳에 이렇게 사는 것에 의문을 품게 한 계기는 '그린파킹'이었다.
그린파킹이란 주택가 골목길의 주차문제와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녹지를 조성해서 친환경적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개별 주택의 담장을 허물고 공용 주차장을 만드는 데 서울시와 해당 구에서 700만원 내지 900만원에 상당하는 공사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추가적으로 방법용 CCTV를 설치하거나 방범창을 다는 것도 지원하고 있다. 그것은 요건을 갖춘 주택주가 관할 구청에 신청해서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주택가의 주차난이란 이미 오래도록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왔고, 좁은 골목을 누비는 차들로 인해 노약자의 보행안전 또한 위협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이미 2004년부터 추진되어 실제로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10년의 어느 날 아침 머리맡에서 쿵쿵 딱딱 부르르르 시멘트 바닥을 파는 장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밖에 나가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들이 차를 샀는데 세울 데가 없어서……." 그래서 그린파킹을 신청했고 이 집의 마당은 공용주차장으로 변신 중이었다.
공사는 며칠 만에 신속하게 마무리됐다. 초록색 대문은 없어지고 반지하로 내려오는 계단 앞에는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하얀 담이 낮게 세워졌다. 그 곳에는 안팎에서 누구나 걸고 풀 수 있는 걸쇠가 달려 있었다. 내 자랑거리였던 방 창문에는 딱 창문 크기만한 간유리가 덧씌워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열쇠로 문을 열고 따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반지하에 사는 것을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언제나 "창문도 크고 마당도 있어서 괜찮아"라고 말해왔는데,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없어졌다. 늘 마당에 모여들던 길고양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단 한 순간도 참여하지 못하고, 달아주는 대로 세워주는 대로 걸어주는 대로 되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우울한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이 좋은 동네, 이 좋은 집, 이 좋은 주인아주머니를 떠나 이사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내가 그린파킹이라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적인 욕구를 우선시하는 인간이었던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왔다. 내가 못 견딘 것은 그린파킹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주인아주머니가 횡포를 부린 것은 없다. 그린파킹을 앞세워 자기 아들에게 주차장을 마련해주고 싶은 의도를 포장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대문과 '내' 마당에 큰 변화가 생기는 일을 나와 사전에 한마디도 상의하지 않고 공사에 돌입했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섭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리 의논을 해주었더라도 나는 "안돼요"라고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령 사전 통보에 불과했더라도 나는 세입자가 그 과정에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음이 크게 섭섭했던 것이다.
그건 내가 아무리 애정을 갖고 있더라도 그 대문은 내 대문이 아니었고 그 마당은 내 마당도 아니었다. 소유하지 않은 자는 주거공간에 대한 의견을 가질 권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공공성의 외피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결국 사적 소유가 모든 권리의 우선적인 원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싫었다. 내 주거공간에 애정을 갖고 내 요구와 의지대로 조성하는 것은 소유하고 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어야 하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럼 나도 집을 소유해야지만 내 대문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내 마당에 길고양이들을 모으고 내 창문을 크게 만들어 햇볕을 담뿍 받고 하는 일들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끝내 이사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가진 돈으로 비슷한 조건의 방을 다른 동네에서도 찾을 자신이 없었고, 흔히 듣는 주인의 실질적인 횡포를 피할 행운이 또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 이후 나는 간유리를 통과하느라 줄어든 빛에 적응하고, 현관 앞까지 들어와 전화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쓰레기를 버리는 무례한 통행인들을 용서하며, 누가 담의 걸쇠를 건드리는지 소리가 날 때마다 덜컹 놀라는 일에 내성을 키우고 있다. 또 문에 너무 바짝 붙여 대는 바람에 한 사람이 나갈 틈도 남기지 않은 누군가의 차를 긁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큰 깨달음을 얻고 도통해가고 있는 세입자로 살고 있다.
사적 소유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원칙을 고수하는 한은 나처럼 아무리 돈욕심 없는 좋은 주인을 만나도 "나도 집을 사고 말거야!"라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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