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민 <민족21> 편집주간(왼쪽)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아버지 안재구 전 경북대 수학과 교수는 남민전, 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차례 무기형을 선고받은 바 있는 통일운동가다.
민족21
참 고약타, 새해 벽두부터. 어머니의 제삿날인 1월 2일, 제사 준비를 위해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무심코 받으니 검찰청 출입기자란다. '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영문도 모르는 내게 그 기자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검찰에서 저와 아버지(안재구)를 기소하면서 수사내용을 발표했는데 간첩 혐의란다. 계사년 새해 벽두부터 웬 날벼락.
화기애애한 집안 분위기는 싹 가라앉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줄줄이 뜬다. 그새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안재구 불구속기소'가 올라와 있었다. 곧이어 나와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지인들의 전화가 줄줄이 걸려 왔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기가 민망하리 만치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다.
지난 2011년 7월 초 나와 아버지가 국정원, 경찰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고, 또 지루한 출두조사를 거쳐 1년 반인 지난 2013년 새해 벽두에 검찰에서 기소한 것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사건이다.
독자들도 기억하시리라. 2011년 7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서 검찰과 국정원으로부터 내용을 건네받아 '북한 정찰총국 지령 받아 간첩 활동'이라는 어마어마한 제목으로 보도를 했던 <민족21> 사건. 그 해 여름 소위 왕재산 사건과 더불어 공안정국을 야기했던 '부자(父子) 간첩' 사건이다(관련기사 :
<"간첩혐의? 국정원이 우리 집 덮쳤어요 34시간 압수수색에 아버지 집은 쑥대밭">).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공안당국은 애초 자신들이 주장하고 언론을 통해 여론재판을 했던 왕재산의 하부조직이었다는 혐의사실도,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혐의사실도 밝혀내지 못했다. 나는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에서 지루하게 출두조사를 받았지만 그들은 끝내 나를 구속시키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혐의 사실 역시 증명하지 못했다(관련기사 :
<"내가 천안함 폭침 '정찰총국' 지령 받았다? 국정원-조선일보의 '간첩놀이' 먹잇감이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더욱 황당했다. 애초 나를 통해 북의 공작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혐의사실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수사를 거부했던 아버지는 몇 차례 경찰청 대공분실로 나와 달라는 출두요구서를 받았지만 묵살했다. 수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수사기관은 단 한 차례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혐의 증명 못한 국정원 수사... 10개월 지나 새해 벽두에 검찰 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