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노동자들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 청구 철회하라

등록 2013.01.03 20:39수정 2013.01.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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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 ①항)

대한민국 헌법은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약한 존재인 노동자에게 사용자를 견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른바 노동3권. 지구상의 대다수 국가는 이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노동3권 가운데 단체행동권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단체교섭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노동자가 쓸 수 있는 권리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손해를 전제로' 행할 수 있는 쟁의행위다. 사용자의 손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무슨 힘을 갖겠는가. 저 헌법 33조는 사용자가 그 손해를 감수하기 싫다면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33조도 살리고 노동자들도 살려야

대한민국에는 합법 파업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파업했다 하면 죄다 불법 파업이 된다.(합법 파업을 어떻게 하는지 노동부가 나서서 시범 좀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생존권을 위한 단체행동들이 빠짐없이 불법으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는 쟁의행위가 폭력적인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그 쟁의행위로 인한 사용자의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요구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헌법 33조도 살 수 있고 노동자들도 살 수 있다.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파업은 있을 수 없다. 약자인 노동자들이 강자인 사용자의 손해를 무기 삼아 행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게 단체행동권 아니던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사용자가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한다면 단체행동권은 존재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쉽게 말해,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말이다.

쌍용자동차노조 237억원, MBC노조 195억원, 현대자동차노조 179억원, 한진중공업노조 158억원, KEC노조 156억원, 철도노조 98억원, 유성기업노조 40억원….

이 가당찮은 손해배상 청구액들 좀 보라.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단체행동을 한 노동자들에게 '생존'을 포기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지 않나. 이 청구액들은 노동자들에게 목숨을 내놓든지 헌법이 규정한 단체행동권을 포기하든지 선택하라는 악다구니가 아닌가 말이다. 노조에 대한 기업들의 손해배상 소송과 재산 가압류 남용으로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목숨을 내던지고 있는데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선자는 오늘도 민생을 말한다. 당선자가 말하는 민생의 '민(民)'은 도대체 누구일까.


목숨을 내놓든지 단체행동권을 포기하든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목숨을 끊기 전날 밤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목숨을 끊기 전날 밤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정민규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지난해 12월 21일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만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고 최강서 조직차장이 남긴 유서의 일부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원. 그가 35살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사측이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때문임을 이 유서는 말하고 있다. 이렇듯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노조와 노동자들의 목을 조르고 그들의 생존을 박탈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잔인하고 비열한 폭력행위가 되어 버렸다. 기업들이 저 허랑한 손해배상 청구를 계속한다면 '민(民)'의 '생(生)'은 거덜나고 말 것이다.

'민(民)중들의 생(生)계'가 달려있는 문제다. 민중의 생계가 민생(民生)이다. '민(民)중들의 생(生)명'이 달려있는 문제다. 민중의 생명이 민생(民生)이다. 노동자가 민중이다. 노동자들의 생계와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다. 그래, 민생이 먼저다. 정부가 나서라. 대통령 당선자가 나서라. 나서서 민생부터 챙겨라.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 철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민생을 살릴 수 있다. 그래야 민생이 살 수 있다.

노동자들 죽음으로 내모는 손해배상 청구 철회하라. 헌법 33조를 장식품 만들지 말라.
#손해배상 청구 #단체행동권 #헌법 33조 #최강서 #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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