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저수지에서 바라본 한옥학교 전경.
김동우
경북 청도의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한옥학교. 공식 명칭은 한옥전통문화원. 입구엔 '韓屋學校' 편액을 단 일주문이 육중하게 서 있다. 지난번 사진에서 소개한 대로 이 학교의 초대교수였던 해운(海運) 김창희 대목장의 솜씨다.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학교가 들어서기엔 꽤 가팔라 보이는 비탈에 여러 동의 한옥과 정자가 있고, 몇 개의 컨테이너도 여기저기 놓여 있다.
처음 짐을 부린 곳은 컨테이너 숙소. 8평 남짓한 넓이에 천장엔 세 개의 형광등과 빨랫줄이 걸렸고, 바닥엔 세로벽을 따라 길게 뻗은 허름한 나무 선반이 전부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1·2학년 기숙사인 왕척재(枉尺齋)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 임시로 쓰는 숙소이다. 3학년은 붕도헌(鵬圖軒)이라는 ㅁ자 한옥 기숙사를 쓴다.
넓고 쾌적한 도시의 아파트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차갑고 휑한 컨테이너 박스에 몸을 눕히자니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집인가? 이곳이 나의 거처란 말인가? 잠들기 전에 들른 세면장은 더 놀라웠다. 마치 잠수함을 연상케 하는 무거운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실제 톤수가 제법 나가는 철선의 선실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낮은 천장엔 빠져나가지 못한 습기가 물방울이 되어 가득 맺힌 채 얼어붙었고, 검붉은 페인트로 두텁게 칠해진 벽이며 사선으로 처리된 선실 유리는 예전에 배에서 쓰던 그대로 사용 중이다. 오른쪽엔 세탁기와 탈수기가 두 대씩 놓였고, 왼쪽엔 샤워기와 수도꼭지가 줄줄이 달렸다.
바닥은 엉뚱하게도 콘크리트를 발라놓았는데, 시골 냇가에서 주워온 듯한 빨랫돌 다섯 개가 나란히 박혀 있다. 그나마 맨 안쪽의 빨랫돌은 윗부분이 다 깨져 나갔고 바로 그 옆돌은 절반이 뚝 잘려 나갔다.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내며 물었다. 너는 정말 목수가 되어야 했나?
'잠수함'을 빼놓곤 한옥학교의 낭만 얘기하기 어렵다 양치질을 하다 말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산중턱에 걸린 빈 배 한 척. 푸른 바다에 떠 있어야 할 배가 엉뚱하게 이 산중턱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고 묶여 있단 말인가. 나 역시 잘못 든 길이 아닐까. 돛도 없고 닻도 없는 난파선을 탄 채 아득한 망망대해를 대책 없이 흘러가는 건 아닐까…. 선실 세면장의 우울한 메타포를 입에 물고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던 길이었는가?
사람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시간의 화장술 또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람은 새로운 환경을 재구성하면서 자기 몸과 정신을 거기에 맞춰 나간다. 여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아마도 컨테이너 숙소와 '잠수함'(여기서는 선실 세면장을 이렇게 부른다)을 빼고는 한옥학교의 추억과 낭만을 얘기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비 오는 날, 컨테이너에 벌러덩 드러누워 철제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보라. 처음에는 청승맞고 처연하게 들리다가 나중에는 맑고 경쾌한 천상의 화음으로 다가온다. 수천 명의 천사들이 두드리는 드럼 소리가 저럴까 싶은 것이다. 그 소리에 마음이 동해 텁텁한 막걸리에 묵은 김치라도 얹어보라. 취기가 오르면 맑은 빗소리는 천장을 뚫고 둥근 술잔 속으로 퐁당퐁당 뛰어내린다. 술잔이 넘친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빗소리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