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별빛산골유학센터 윤요왕(42)대표. 그는 "젊을 땐 인권단체로 봉사했는데, 이젠 귀농을 해 아이들 가르치는 걸 보면 이 일이 제 '업'인가보다"라고 말했다.
송유경
"아이들이 절더러 '산골쌤'이래요."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소양강을 따라 산골로 굽이굽이 들어간 그 곳엔 '산골쌤'이라고 불리는 이가 있다. 지난 3년 간 동네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윤요왕(42) 춘천별빛산골유학센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봄바람이 살랑이던 지난 1일 센터에서 윤씨를 만나 아이들과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센터로 '유학' 온 도시 아이가 '산골쌤'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말하는 윤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는 "아이들은 학교를 갔다가 오후에 센터에 와 방과 후 학습을 하고 있다"며 "목공, 바느질, 통기타, 요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도시에서 이곳으로 유학을 온 아이들은 센터에서 선정한 9개의 농가에서 홈스테이 형식으로 생활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윤씨는 "공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마음껏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줘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수업 선택권'을 줘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윤씨는 "어떤 분은 농촌유학을 '결핍체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족해서 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이상하게도 도시 생활에서 풍족한 부분은 결핍이 되는데, 농촌으로 유학을 와서 이 결핍된 부분을 채워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돌보기 힘든 아이, 문제아라고 낙인 찍을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냐고 묻자 윤씨는 "심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고 말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어 그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던 아이였다"며 "그림일기에는 총, 칼을 그리고, 수업에 참여해도 아기 같은 모습을 보였었다"고 설명했다. "이 아이가 처음 유학을 오기로 결정했을 때 학교 측에서 '어떻게 그런 아이를 받느냐'고 반대를 했었다"며 "그 때 '이 아이를 못 받으면 산골 유학을 접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고 밝혔다.
아이를 보지도 않고 판단한 학교 측에 화가 났던 그는 학부모들을 만나 서명 운동을 벌였다고도 한다. 결국 아이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후 1년, 2년이 지나는 동안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4년 째 산골유학을 하고 있다는 아이는 현재 어엿한 중학생이라고 한다. 윤씨는"'이 아이가 예전에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며 "그 아이가 제 '첫 정'이라고 할 만큼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센터에는 일명 '스펙'을 쌓기 위해 유학을 오는 강남의 아이들도 있지만,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오기도 한다. 윤씨는 "도시 학교에서는 '문제아'라고 하지만, 이 아이들이 과연 문제아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며 "돌보기 힘든 아이, 학습이 어려운 아이라고 할 순 있지만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귀농을 하기 전 윤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운동을 했었다.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일적으로 대하다 보니, 형식적이고 사무적이게 대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내가 이 일을 왜 할까?', '이 일을 해서 내가 얻는 게 뭘까?'라는 생각까지 했다는 그는 "그러다 보니 제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귀농 전에 아는 형님 댁에서 1년간 하숙을 했었다"며 "그 대가로 농사를 대신 지어주고, 농가 일을 많이 익혔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시절, 이 곳 고탄리에서 농촌활동을 했던 게 생각이 나기도 했다"는 그는 그렇게 귀농을 결심했다고 한다.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다"그런 그가 지난 2010년에 센터를 만든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윤씨는 "당시 송화초등학교에 학생들이 부족해 폐교 위기해 처했었다"며 "그러다 한 일본 잡지에서 도시 학생이 시골로 와 '유학'하는 것을 보게 됐는데,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이어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출근하면 논밭을 일구고, 네 살 배기 딸을 돌봤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동네 학부모들과 상의해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시작은 작은 유치원 교실이었다. 윤씨는 "학부모들과 월 2만 원씩 모아 아이들 간식을 사 먹였다"며 "방학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안 주니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후 재정이 점차 안정돼 마을회관을 개조해 쓰게 됐고, 올해 3월부터는 솔다원나눔터 건물을 임대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선정을 해 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는 "저는 대표 역할을 할 뿐 학부모, 농가 주민들, 도시 부모님들까지 참여하는 주체는 다양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윤씨에게 힘이 돼 주는 건 가족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인 아들이 있다는 그는 현재 아들과 동갑인 유학생이 집에 묵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아빠, 유학생 안 받으면 안 돼?'라고 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대체로 잘 지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농사만 하면 더 행복했을 수도 있는데, 센터를 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해진 것 같다"며 "주말엔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싶어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 아내가 힘들어 한다"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윤씨는 "농촌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센터는 꼭 필요하다"며 "농촌 아이, 도시 아이 할 것 없이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센터를 매개체로 해서 좀 더 행복하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마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 아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희망을 내비친 그는 "할 수 있다면 이곳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었을 땐 인권단체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했는데, 이젠 아이들 가르치는 데 힘 쏟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남 돕는 일이 제 '업'인가봐요, 업"이라고 말하며 웃음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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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지친 아이, '농촌유학' 보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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