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에 귀농한 첫 날, 우리 농장 뒷 산으로 오르는 길이 밝다.
김기영
지난 4월 9일 50여 년을 살아온 서울을 떠나 강원도 철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내 삶의 자리를 옮긴 지도 벌써 3개월을 꽉 채운 셈이다.
막연히 '은퇴를 하고 나면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골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뜻을 같이하는 친구 몇과 철원에 농업법인을 세우고 철원에 연고지를 처음 만든 것이 7년 전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 7년의 세월 동안 수시로 나는 서울을 떠날 꿈을 꾸었다. 그러나 모든 순간들이 그것으로 그만인 충동이었을 뿐,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내가 부담해야 할 책임은 무거웠다.
망설임을 끝내고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뒤로는 실행하기까지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7년을 망설이다 3개월 만에 비교적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최근 몇 년 사이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 때문이다.
[#1] 친구의 죽음4년 전 늦은 봄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친구의 이름이 떴지만, 친구가 아닌 친구 와이프였고, 전화기를 통해 "조금 전 남편이 죽었어요"라는 울먹거림을 들었다. 불과 몇 개월전 둘이서 같이 식사를 하며 나눈 친구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25년 넘게 밥 벌어 먹고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 이렇게 사는 거 그만하고 싶다." 그 얘기에는 덕지덕지 스트레스가 묻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가 한 달 전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것, 친구가 죽은 바로 그날이 친구의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일을 정리하고 회사에서 가장 친했던 동료와 단 둘이서 홀가분하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텐데, 그게 뭔지는 들을 수 없었다.
[#2] 심근경색2년 전 늦가을, 나는 간헐적으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반복되는 통증이 낯설고 기분 나빠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다행인지, 심혈관 진료 검사를 받는 중에 심근경색이 왔고, 바로 시술을 받았다. 시술 후 중환자실에 열 시간 정도를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허벅지 동맥의 지혈을 위해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말똥말똥한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중환자실의 풍경은 더욱 힘들었다.
퇴원을 하면서 의사로부터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것과 더불어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을 들었다. 술과 담배는 끊었지만, 여전히 내가 가진 책임으로부터 내 스스로 자유롭지 못 했기에 마음이 편안해지지는 않았다.
[#3] 박근혜 당선지난해 12월 19일 오후 8시를 넘긴 시간부터 근 열흘이 넘도록 TV는 물론, 인터넷도 열지 못했다. 방송에서 말하는 결과가 믿겨지지 않았고, 그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과 앞으로 5년간의 대통령으로 박근혜씨를 보는 것이 무서웠다.
[#4] 힐링그렇게 휑한 마음을 갖고 하루 하루를 보내던 중, 친구로부터 우리 농업법인이 2년 전 구입한 농장에 매 주말마다 일을 하러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 그저 바람이나 쐬자 하고 가볍게 나선 그 첫 날 이후 매 주말마다 철원을 찾았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 농장 뒷산 나무를 베고 정리하고, 눈밭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찬 막걸리를 마셨다. 일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고, 일주일 내내 몸이 무거웠지만 매번 주말이 그리워졌다. 몸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 땀 내고, 몸을 닦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한겨울을 보낸 2월 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4월 초 철원으로 아예 내려왔다. 그리고 지금 철원에서 3개월을 보냈다. 처음 내려올 때 밝은 봄날이었던 이곳이 여름 장마로 풀과 물이 많아졌을 뿐,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늘 행복하다. 그래서 살 것 같다.
인생 뭐 있나, 마음 편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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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덕분에 귀농 결심... 그 후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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