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과 오연호 대표가 공동 집필한 대담집 <새로운 100년>
오마이북
출판사에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이 책을 반드시 읽을 사람은 누구일까. 오연호 기자나 법륜 스님을 옹호하는 사람? 조국 교수와의 대담 <진보집권플랜>을 읽고 후속작을 기다렸던 사람? <오마이뉴스> 관계자 정도가 아닐까. 그럼 반대로, 이 책이 추천도서에 몇 달간 올라가 있어도 절대로 읽지 않을 사람은 누구일까. 평소 책을 안 읽는 사람? 다른 종교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 <오마이뉴스>가 그냥 싫은 사람 정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나는 오연호 기자, 법륜 스님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편견조차 가질 수 없었다. 거창하게 중립이나 포용이란 말로 포장하면 좋겠지만,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내가 갖고 있던 단편적인 역사 정보는 지식이 되었고, 그 지식은 의식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 책을 통해 찾고자 했던 '역사의식을 가진 깨어 있는 시민'이자 '통일의병'을 내 안에서 찾았다. 그럼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어땠을까?
나는 IMF 금융위기 직후 대학에 진학한 98학번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딛고 오르거나 밀어내야 했고, 밖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악으로 버텨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고, 반대로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고받은 상처는 안으로만 곪다가 결국 밖으로 터졌다. 그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개월 병가를 가졌다.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그때가 마침 2012년 대선을 앞둔 시기였고, 책 <새로운 100년>을 만난 때이기도 하다.
지인이 추천해서 사긴 했는데,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우선 오연호가 누군지, 법륜 스님이 누군지 몰랐고, 속세에 물든 중생들에게 통일만 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하는 현실감 떨어지는 내용일 것 같았다. 요즘같이 하루 앞도 어찌 될지 모르는 판에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는 스님이 혜성처럼 떠오르더니, 이 스님은 아예 100년 앞을 내다보란다. 이왕 멈춰 섰으니 까짓것 100년도 한번 내다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혈육 만나는 기쁨보다 불안과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
법륜 스님이 출가하게 된 사연, 동학을 세운 최제우 선생 이야기, 동학농민운동과 기미 독립선언에 관한 이야기로 책은 시작되었다. 기미 독립선언은 종교별 지도자 33명이 모인 민족대표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불교 지도자 대표는 단 2명이다. 한 분은 <님의 침묵>이란 시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 스님이고, 다른 한 분은 근대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백용성 스님인데, 이분의 3대 제자가 바로 법륜 스님이다.
2대 제자인 도문 스님은 경주 최씨인 법륜에게 '천 년을 내다보고 동학을 만든 최제우 선생의 후손이니, 너도 앞으로 천 년을 내다보고 살아라'라는 당부를 했단다. 독립에 큰 뜻을 둔 스승의 업은 대를 이어 통일이란 이름으로 법륜 스님에게 전해졌다. 결국 법륜 스님이 통일 이야기를 하고 이를 위해 발로 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만약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였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법륜 스님은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민족적 책임감을 가진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데, 다섯 가지 실천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동학혁명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사, 분단전후사를 정확히 아는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둘째 고구려, 발해, 남북국 시대를 포함한 민족의 뿌리인 고대사를 공부할 것. 셋째 북한의 현실과 현안을 정확히 파악하고, 넷째 동북아 세력 변화를 파악하고, 다섯째 민족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것.
공부하고 파악해야 할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설명은 2장에서 9장까지로 이어지는 책의 구성과 일치한다. 지금이라도 역사의식을 가진 깨어 있는 시민이 되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읽으면 좋을 입문서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바로잡힌 근현대사 교육을 받을 시기를 놓친 상태라 과거에 익힌 잘못된 역사 지식을 먼저 청산할 필요가 있었다. 1980~1990년대 교육 과정에 따라 학창 시절 내내 '반공' 교육만 받았다. 친할머니는 연좌제를 피해 6·25전쟁 직후 실종된 남편과 장남을 사망 신고했고, 그 덕분에 공기업에 취업한 아버지는 30년 정년을 채우고 얼마 전 퇴직했다.
월북 연좌제를 피해 나라의 녹을 먹고 살았기에, 전·현직 정권을 욕하거나 실종된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바로잡힌 역사를 배우기도 전에 진실을 알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먼저 배웠다.
과연 진짜 통일을 바라는 이들은 누구일까?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정부 차원에서 파악하기 시작한 실향민, 납북자와 납북피해자 가족의 규모는 옛날 자료 명부와 가족단체를 통해 추정한 대로라면 약 9만6000명이다. 그리고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신청자가 2011년 기준으로 약 13만 명이라고 한다. 누적 통계이기에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이유와 관계없이 빨리 통일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 직후 실종된 아버지와 형이 북한에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데도 나의 아버지는 납북피해자 신고와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냥 받아들였다. 혈육을 만나는 기쁨보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스님에게 묻습니다 "통일이 진짜 밥 먹여줍니까?"법륜 스님은 통일 후 북한 지역 개발을 통한 경제 특수를 발판삼아 급부상하는 경제 강대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민족적 책임감과 역사인식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통일해야 한다고 설명하니 논점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100년을 내다보는 상황에서 생각해보니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이들은 실향민, 이산가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대 느낄 수 없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는 경쟁력을 갖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북한에 별로 가고 싶지도 않고, 갈 이유도 없고, 보고 싶은 가족도 없는 이들에게 통일의 당위성을 심어 주는 방법이다.
시대적으로 통일하기 아주 좋은 기회가 왔지만, 정권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고 과거 '반공' 정신을 다시 떠오르게 하기 좋은 인물이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은 있다. 지난 6월 28일, 국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결의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정치인들이 먼저 뜻을 모았으니 이제 국민이 힘을 실어줄 차례가 온 것이다.
또 하나의 희망은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남한으로 이주해온 아이들이다. 한겨레학교는 이런 아이들을 모아 상처를 보듬어주고, 남한 사회 정착을 위한 교육을 한다. 이 아이들이 쓴 시와 수필을 모아 <달이 떴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중고생이 쓴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글에 깊이가 있고, 현재 생사를 알 수 없거나 북한에 남아 있는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모두가 통일을 바라고 있다. 이 친구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고 잘 자라서 힘 있는 통일의병이 되기를 바란다.
이 서평을 읽고서 정치적 편견과 종교적 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100년>을 읽어볼 마음이 생기는 독자들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마음먹은 김에 그냥 한 번 읽어보자. 그리고 묻자. '스님, 통일이 진짜 밥 먹여줍니까?'
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개정증보판
법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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