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산양을, 제발 그냥 이대로 놔두세요

[편지]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는 안 됩니다

등록 2013.09.03 10:22수정 2013.09.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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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지주 일대의 산양 분포도 설악녹색연합이 조사한 케이블카 노선 5번 지주 일대의 산양 분포도
5번 지주 일대의 산양 분포도설악녹색연합이 조사한 케이블카 노선 5번 지주 일대의 산양 분포도박그림

안녕하십니까? 저는 설악산에서 살고 있는 박그림이라고 합니다.

설악산 어머니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 꿈도 많고 고민도 많았던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1966년 가을 설악산을 찾아와 아름다움에 빠지면서 잊지 못할 곳이 되었고 해마다 설악산에 들렀습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설악산은 제 삶을 바꾸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내설악 골짜기를 오르다 먼발치에서 본 산양은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1992년 10월 드디어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설악산 언저리로 옮겨왔고, 그 이후로 쭉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3년 3월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하고 설악산의 상처와 아픔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지 어언 21년째 되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 때문에 술로 지새우던 나날들, 생활에 쫓기며 산을 오르내렸던 나날들, 설악산 세계자연유산 등록을 못했던 일은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뒤 내 삶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술, 담배, 커피를 끊었고 끼니를 생식으로 먹으면서 산에 들어 산양의 뒤를 밟았습니다.

멸종위기종 1급, 산양들이 위험합니다

흙이 깊이 쓸려나간 대청봉 대청봉 정상은 50cm 이상 흙이 쓸려 나갔다. 이제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입산예약제가 필요한 때다
흙이 깊이 쓸려나간 대청봉대청봉 정상은 50cm 이상 흙이 쓸려 나갔다. 이제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입산예약제가 필요한 때다박그림

산양이 사는 곳을 드나들며 산양을 조사한 지 벌써 19년째, 내 발로 설악산의 산줄기와 골짜기를 누비면서 흔적을 찾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궁금했던 것들을 나라 안에서는 알 수 없어 2001년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에 우리나라와 같은 종의 산양 전문가를 소개해달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의 알렉산더 미슬랜코프와 인나 볼로시나 박사 부부를 소개 받고 그 해 10월에 두 분을 초청해서 설악산의 산양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었던 모든 궁금증이 풀렸고 그 뒤 서로 오가며 지금까지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탐방객들에게 산양은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흔적조차 쉽게 볼 수 없는 무관심의 대상일 뿐입니다. 지자체는 아예 설악산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길 뿐 환경보존과는 거리가 멉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시도하는 강원도 양양군의 산양에 대한 대책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공사 중에 이동했다가 공사가 끝나면 돌아온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그들의 말처럼 된다하더라도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이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전국에 800마리쯤 남아 있는 야생동물입니다. 케이블카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결국 산양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설악산은 정해진 넓이의 자연 생태계이며 오직 하나뿐인 곳입니다. 그곳에 겨우 목숨 붙여 살고 있는 산양들의 삶터에 지자체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정상을 찾는 탐방객은 끝없이 늘어 상처는 깊어지고 아픔은 커지고 있습니다.

대청봉의 등산객들 한해 50만 명이 오르는 대청봉, 케이블카로 50만 명이 더오르면 100만 명이 오르게 된다. 입산예약제만이 설악산을 살리는 길이다.
대청봉의 등산객들한해 50만 명이 오르는 대청봉, 케이블카로 50만 명이 더오르면 100만 명이 오르게 된다. 입산예약제만이 설악산을 살리는 길이다.박그림

한해 50만 명이 정수리인 대청봉에 오릅니다. 그로인해 땅은 깊이 패여 나갔습니다. 땅 속에 있던 바위들이 드러나 황량한 모습으로 바뀐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유한한 자원을 무한히 이용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끝내 설악산은 모든 가치를 잃고 죽은 산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오색-관모능선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훼손은 더욱 가속화 되어 설악산은 정수리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상부종점의 시설물을 통해서 관모능선 일대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물론, 상부종점 전망대에서는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청봉에 오르려는 욕구가 빗발칠 것입니다.

결국 길이 열리게 되면 케이블카 탑승객 50만 명이 대청봉에 더 오르게 되고 한 해 100만  명이 대청봉에서 북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더구나 대청봉에 올라 걸어서 내려간다면 훼손의 문제는 설악산 전체의 훼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나는 꿈꿉니다,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바위 밑에 자리한 산양의 쉼터 오랜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보존의 결과 산양 최대서식지가 되었다.
바위 밑에 자리한 산양의 쉼터오랜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보존의 결과 산양 최대서식지가 되었다.박그림

케이블카 노선과 상부종점예정지가 들어설 관터골 일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개방되지 않고 보존된 설악산 산양의 최대서식지이며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이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의 핵심지역입니다. 대청봉 눈잣나무 특별보호구의 경계부에 위치하고 있는 전망대의 스카이워크는 특별보호구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2015년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1시간 반이면 양양에 닿습니다. 오색에 와서 케이블카 타고 올랐다가 내려와서 머물다 갈 사람이 있을까요? 속초나 강릉으로 나가게 되고 오색은 지금보다 더 힘든 날들을 맞을 것입니다.

케이블카보다는 오색지역이 갖고 있는 산골마을로서의 특징을 살려서 느린 관광으로 지역에 머물다가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민들의 삶을 지금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은 머물며 바라본 설악산의 아름다움입니다.

설악산을 찾는 이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찾아서 산에 오르지만 경관을 망치는 케이블카의 영향은 무엇으로도 보완할 수 없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사라지게 되고 지역민들의 삶도 피폐해질 것입니다. 자연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대청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시위 아이들에게 되돌려줄 자연유산을 가로채지 말라. 광복절날 대청봉에 올라 케이블카로부터 해방을 외쳤다.
대청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시위아이들에게 되돌려줄 자연유산을 가로채지 말라. 광복절날 대청봉에 올라 케이블카로부터 해방을 외쳤다.박그림

나는 늘 꿈을 꿉니다.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우리 아이들이 볼 수 있기를 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누린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며 설악산의 주인인 야생동물들의 생존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떠나간 설악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살지 않는 설악산에서 우리들은 살 수 있을까요?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하며 올랐던 대청봉이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1인 시위는 설악산과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었고 그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은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긴 편지를 올립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설악산에 살고 있는 뭍 생명들과 아이들의 삶이 이번 결정에 달려 있음을 깨닫기에 오체투지로 대청봉에 오르던 때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일대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3-6번 지주 모두 산양 서식지다.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일대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3-6번 지주 모두 산양 서식지다.박그림

덧붙이는 글 9월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가부가 결정됩니다. 설악산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결정권자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한겨레 물바람숲에도 보냈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관터골 #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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