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추천서' 못 믿겠다고? 기자님 왜 이러세요

[학생의 주장] 하루에 2시간 만나는 담임, 추천서만 20여개 써야하는 게 현실

등록 2013.09.11 19:20수정 2013.09.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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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9월, 수시 접수가 끝나간다. 수능 준비로 획일적으로 돌아가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분위기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작성으로 어수선해졌다.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진학 상담이나 입시자료 준비 등으로 자리를 비워 자습 시간도 늘어났다.

"너희는 자기소개서 한두 개만 쓰면 되지만, 선생님은 20여개의 추천서를 써야 해요. 그러니까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들 써."

한 학교의 시간표 이 시간표에는 한국지리(한지) 수업이 1주일에 2시간 들어 있다. 만약에 한국지리 선생님이 내 담임선생님이라면? 과연 추천서가 심층적으로 작성될 수 있을까.
한 학교의 시간표이 시간표에는 한국지리(한지) 수업이 1주일에 2시간 들어 있다. 만약에 한국지리 선생님이 내 담임선생님이라면? 과연 추천서가 심층적으로 작성될 수 있을까.김민호

지난 8월 개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조회 때 하신 말씀이다. 강의식 수업이 대부분이라 선생님들과 친분 쌓기가 어려운 편이다. 자연히 3년 동안 여러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어도, 정작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많은 친구들이 한참을 고민하다 향하는 것은 결국 담임선생님.

"뭐가 정해진 건 없지만 3학년 담임선생님이 추천서를 써 주시는 게 일반적이야. 3학년 담임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의 추천서를 제출하면, 대학이 3학년 담임선생님과의 불화를 의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다들 모험하지 않고 담임선생님께 가는 거지."

왜 교과목 선생님들이 아니라 '담임선생님' 혼자서 20여개의 추천서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같은 반 친구의 설명이다. 하긴, '다들' 그런다는데 입시를 앞두고 용감한 선택을 할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추천서 부탁만큼은 거절할 수 없는 담임선생님들은 일주일에 자기 반에 6시간을 들어오시든, 2시간을 들어오시든 전부 학생들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일주일에 2시간만 학생들을 대할 수 있는 담임선생님에게도 대학은 '구체적인' 기술을 요구한다. 자세한 기술을 위해서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15분씩의 진로상담 정도가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인 현실에서 선생님들은 추천서를 '쥐어짜야 한다'.

대필과 셀프추천... '왜'가 빠진 언론보도


가깝지 않은 학생 수십 명의 추천서를 모두 자세하고 정확하게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기에 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추천서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정리해오라고 부탁한다. 학생들이 강조하고 싶은 점과 수상 내역을 작성해 가져가면, 선생님들은 이를 참고해 추천서를 작성한다. 주당 15~18시간에 이르는 수업과 행정업무 그리고 진학지도를 병행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수시 원서를 작성하는 8~9월이 되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런 때 지난 8월 25일, KBS는 '못 믿을 교사 추천서'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기사에는 "대필과 표절로 점철된 믿지 못할 추천서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90초 내외의 짧은 이 기사는 대필과 표절의 문제는 강조했지만, 선생님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은 부각시키지 못했다. 물론 이 같은 행위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KBS 보도가 일부 선생님들이 '왜 그랬을까'에는 주목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철저한 시스템적 관리로 진행되는 미국의 '입사관제'

커먼앱 서약서 여기서 만약 'I DO NOT waive my right'(학생이 추천서를 볼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를 누르면? 이 웹페이지에는 커먼앱 서약에 동의하지 않은 학생의 추천서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커먼앱 서약서여기서 만약 'I DO NOT waive my right'(학생이 추천서를 볼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를 누르면? 이 웹페이지에는 커먼앱 서약에 동의하지 않은 학생의 추천서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김민호

외국어고등학교인 우리 학교에는 해외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국제반이 있다. 한 학년 당 50명 정도인 국제반의 상당수 친구들은 영문학과 영작문 수업을 진행하는 외국인 교사에게 추천서를 받는다. 3학년 1학기까지 진행된 국제반 수업은 주당 15시간. 수업은 할당된 과제 후 토론 위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과 교감할 기회가 많다.

외국인 교사 개개인이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지 않은 구조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교사는 각종 행정업무에서 자유롭고 학교의 경직된 학사 일정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수업과 학생 평가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기에 추천서 부탁을 받는 외국인 교사는 에세이 등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심층적인 추천서를 작성한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학 공통 원서 접수 시스템인 커먼앱(CommonApp)을 사용한다. 커먼앱은 학생들에게 추천서를 볼 권리를 의무적으로 포기하도록 서명을 받는다. 이 서약서가 작성돼야 커먼앱과 각 고등학교 진학상담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가 연동된다. 그래야 대학 진학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이후 추천서는 커먼앱을 통해 학생을 거치지 않고 대학으로 바로 전송된다. 몇 십년 동안 입학사정관제를 유지해온 미국은 철저한 시스템 관리를 통해 추천서의 중요성을 학생과 교사 모두가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당신 나라 교육제도가 변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교실 당 학생 수를 먼저 줄여야 합니다(If you want your education system to change, you first need to reduce the number of students in your class.)."

수업시간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던 지리 선생님이 외국의 한 교육 포럼에 참가하셨다가 한 외국 교육학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선생님은 "30~35명이 넘는 교실에서 어떻게 세부 교과목 평가를 작성하고 자세한 추천서를 써줄 수 있겠느냐"며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평균 학급 당 학생 수가 21명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은 아직 '콩나물 시루'다.

입학사정관제, 폐지가 답일까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박근혜 정부의 대입제도 간소화 논의가 합쳐지면서 한때 입학사정관제 폐지가 거론되기도 했다. 일부 선생님들이 입학사정관제가 주는 업무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생님들도 입학사정관제가 본질적으로는 수능 위주의 획일적인 평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대입에 학생부 반영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학생부 반영을 늘려 사교육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현장의 선생님들이 체감하는 업무 부담이 줄어들 때만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살려질 수 있다고 본다.

지리 선생님의 불평 속에는 현장과 행정의 소통 부재에서 오는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매일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정직한 추천서를 방해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추천서 #입학사정관제 #대학입시 #학급 당 학생수 #교육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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