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부족 서울대공원? 혈세 펑펑 쓸 때는 언제고...

[주장] 동물복지 우선 고려한 동물원 관리 체계 만들어져야

등록 2013.12.12 15:40수정 2013.12.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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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호랑이에 의해 사육사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서울신문>은 지난 11월 29일 서울시가 2009년 서울대공원 재조성을 위한 아이디어 수집을 위해 국제현상공모전을 열었지만, 사업의 현실성이 부족하고 입장료도 10배 이상 올려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 결국 포기했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내보냈다('호랑이 습격' 서울대공원, 예산 부족으로 시설 보수 손도 못대). '입장료 인상'이라는 현실적 어려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제시된 구성안의 실효성은 보나마나였을 것이다.

2002년, 서울시는 이미 '서울대공원 생태동물원 조성 기본계획'을 시행한 적이 있다. 당시 생태동물원을 계획한 동물원 설계전문가로서 나는 최근 동물원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실성 검증 안 된 아이디어 공모에 15억 쓴 서울대공원

 서울대공원 재조성을 위한 기본구상 및 타당성 국제현상공모 계획안 중 일부. 상금 규모가 상당히 크다.
서울대공원 재조성을 위한 기본구상 및 타당성 국제현상공모 계획안 중 일부. 상금 규모가 상당히 크다.인터넷 갈무리

2002년, 나는 수의학과 교수 등과 함께 팀을 구성해 기존 동물원 시설에 대한 충분한 분석을 한 뒤 미국 오마하 동물원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체험한 내용과 세계적인 동·식물원 전문가 및 서울대공원 직원·이용자들과의 워크숍을 거쳐 생태적이고 동물복지가 고려된 계획안을 용역과제로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2003년 새로 부임한 이원효 전 서울대공원 원장은 이 계획 대신 2009년 서울시와 함께 '서울대공원 재조성을 위한 기본구상 및 타당성 국제현상공모'를 시행했다. 상금은 총 15억 원(당선작 6억5000만 원)이었는데, 서울시는 공모 운영비 등을 포함해 20억 원에 가까운 혈세를 쏟아부었다.

이 공모는 구체적인 설계안 공모가 아니라 아이디어 공모이므로 시행을 위해서는 구상안이 채택되더라도 다시 기본계획·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추가로 지불돼야 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인  2008년 면적이 70배나 되는 '새만금 종합개발 기본구상을 위한 국제공모'에 상금 총 1억5000만 원(당선작 5000만 원)을 지불한 국제 기본구상 현상공모와 비교해 봐도 훨씬 높은 큰 규모였다. 상금이 커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후원한 현란한 전시행정의 결과였으며, 용산 개발과 같은 허황된 꿈의 결과였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성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얻겠다고 서울대공원 1년 지원예산인 30억 원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혈세를 퍼부은 서울시가 동물원에 지원할 예산이 없어 몇 년 뒤 동물사의 잠금장치를 고치지 못해 호랑이 탈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간 무모한 예산 집행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서울시에 물어야 한다.


19세기형 동물 전시방식 고수한 서울대공원

 철창 우리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서울대공원의 19세기형 호랑이 전시관
철창 우리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서울대공원의 19세기형 호랑이 전시관김성균

최근 발생한 동물원 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건립 당시 적정 규모보다는 평양동물원보다 크게 만드는 게 목적이어서 너무 크기만 하고 동물사가 넓은 공간에 여기저기 배치돼 관리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또한, 각 전시관이 멀어서 관람하기 힘들고 관리비만 많이 투입된다. 바람직한 동물원은 동물의 행태를 고려한 집약적인 연계 배치와 유지관리 그리고 동물의 활동과 자연 서식지를 고려한 생태적인 동물전시 및 합리적 관람 동선이 중요하다.

둘째,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설계는 우리나라 건설기술이 부족했던 70년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설계 시 동물들의 행태가 잘 고려되지 않은, 단순히 철창에 갇힌 19세기형 동물우리 전시방식이다. 따라서 동물복지가 고려되지 않아 동물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돼 있다. 이것이 호랑이 탈출의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셋째, 주로 행정직에서 배출됐던 서울대공원 원장 등 고위직의 전문성이 부족해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투입하고, 동물원 운영을 위해 직원들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새로 부임한 원장이 우선적으로 동물의 복지, 동물사 관리 철저, 안전 철저 등을 강조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이번 사고의 예처럼 곤충사에 근무하던 직원을 충분한 교육 없이 맹수사에 배치하는 등 동물의 행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사육사의 비전문성도 문제다. 이는 동물의 행태를 고려하지 않고 동물원을 관리했다는 증거다.

다섯째, 동물원에서는 모든 동물과 동물사에 대한 운영지침이 필수적인데 이것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있어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게 이번 사고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복지가 우선이다

 자연생태서식지를 모방해 조성한 세계 대표적 동물원인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호랑이 전시관
자연생태서식지를 모방해 조성한 세계 대표적 동물원인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호랑이 전시관김성균

그렇다면 서울대공원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

동물원은 동물의 행태·전시·자연서식지·문화·질병·동물복지·관람자·유지관리·경제적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복합시설이다. 시설조성 및 관리에 수준높은 전문성이 요구돼 일반 공원이나 주제 공원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최근 동물원 설계 및 관리의 세계적 추세는 동물을 우리 속에 가둬 전시하는 게 아니라 동물들이 살고 있는 자연생태 서식지를 조성해 자연에서 활동하는 동물들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동물들의 복지가 우선이고, 동물원이 주요 동식물의 종 보존을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흔히 동물원을 '돈 먹는 하마'라고 부른다.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많은 동물을 영원히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예산이 수반된다. 동물원은 오로지 시민들의 교육 등 공익적 측면에서 세금으로 유지되는 측면이 많으므로, 지속가능성에 바탕을 두고 설계 및 관리를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많은 동물을 잘 유지하기 어렵다.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에 주로 의존하고 예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끊임없는 지속가능한 동물원 경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서울대공원 재조성이 전시행정의 영역에 있으면 안 된다. 지난 국제현상공모처럼 서울대공원을 새로 짓는 것처럼 제시한 대안은 타당성이 없다. 새로운 대안은 기존의 시설을 잘 활용하고 새로 보완하는 동물공원 재생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제시됐던 생태동물원 기본계획안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지방도시에도 여러 공공 동물원이 많다. 이들 각각의 동물원이 똑같은 동물들을 똑같이 보유하고 관리한다면, 전체적으로 예산이 중복돼 국가적으로 예산이 낭비된다. 뿐만 아니라 전시내용이 비슷한 다른 동물원을 관람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동물에 대한 전문가를 모든 동물원에 똑같이 배치하기 쉽지 않다.

합리적인 경영의 대안으로 우리나라 전체의 동물원을 통합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각 동물원마다 지역의 조건에 따라 특화된 동물을 배치하고, 각 동물원에는 특화된 동물 종에 대한 보존·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체 동물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시민들은 여러 도시의 각기 다른 다양한 동물원을 찾아갈 필요를 느낄 것이며, 관람객 증가로 동물원 만성 적자 해소의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공원 내외부의 구체적인 문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이번 사고로 인해 희생된 사육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육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서울대공원의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입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서울대공원국제현상공모 #국제현상공모 #서울대공원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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