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귀족적 공화정'

[주장] 박근혜 정부는 참주정일까?

등록 2013.12.18 17:51수정 2013.12.18 17:51
1
원고료로 응원
박근혜 정부는 참주정일까?

박근혜 정부는 참주정(tyranny)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최근 유시민, 장하나, 양승조 같은 정치인들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언사를 보면 그들이 참주정이라는 학술적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보거나 단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유시민 전장관이 노무현 재단 송년회 행사에서 "올해 가장 기억되는 것은 북에선 장성택 숙청·사형, 남쪽에선 이석기 관련 내란음모 사건인데 그게 같은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8일 장하나 민주당 의원도 "부정선거 수혜자 박 대통령은 사퇴하라, 보궐선거 실시하라"고 주장하였다. 양승조 민주당 최고의원도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을 무기로 통치하다가는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1인 지배체제'라는 대중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참주정'이라는 학술적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전자를 사용할 경우 '1인 지배체제'는 무조건 나쁜 체제이고, 역으로 '1인 지배체제'가 아닌 '민주정'은 무조건 좋은 체제라는 통념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또한 김정은 체제와 박근혜 체제가 정말 같은 체제인지 여부를 엄밀하게 따져보기 위해서이다. 플라톤은 정치체제를 지배자의 숫자(1인 지배, 소수지배, 다수지배)와 권력의 획득과 사용방법(합법적 획득과 공적사용, 비합법적 획득과 사적사용)에 따라 좋은 정치체제 3개(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와 나쁜 정치체제 3개(참주정, 과두정, 중우정)로 분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는 6개의 정치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가장 좋은 체제의 대안으로 '공화정(혼합정)'을 지지하였다. 그들이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을 혼합시킨 공화정을 지지했던 이유는 '순수한 단일정체'만을 지향했을 경우, 부패와 타락의 순환과정을 막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귀족정'은 부자만을 대변하는 '과두정'으로, '민주정'은 빈자만을 대변하는 '중우정'으로 쏠리게 되어, 정체의 균형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정은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을 동반하기 때문에 참주의 등장 가능성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군주정, 귀족정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불안한 체제'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대안으로 공화정(혼합정)을 선택한 것은 평민과 귀족의 계급투쟁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로마 공화정이 성공했던 것처럼, 그들의 갈등과 협력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국가의 공공선으로 제도화시켜 공생과 번영의 힘으로 사용키를 원했기 때문이다.

참주정이란?


참주정은 군주를 참칭(僭稱)한 1인 지배체제라는 점에서 군주정과 유사하지만 권력의 획득방식과 사용에 있어서는 확연히 다른 '최악의 체제'이다. 참주정과 군주정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가 '합법적인 1인 지배체제'라는 점이고, 후자는 '비합법적인 1인 지배체제'라는 점이다. 참주정은 전기 참주와 후기 참주로 구분된다.

전기 참주는 대체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가는 과도기에 등장한 참주로서, 귀족중의 일부가 평민들의 지지를 등에 없고 귀족정을 타도하여 권력을 잡고 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친서민적인 파퓰리즘적인 정책을 펴다가 '전제정'으로 전락하거나 세습을 물려받다가 몰락한 참주들을 말한다. 이에 비해 후기 참주들은 대체로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혼란한 과정에서 군사적 능력과 참주적 선동능력으로 권력을 찬탈하여 폭압적인 반서민 정책을 추구하다고 몰락한 참주들을 말한다.

전기 참주의 예로는 기원전 561년에 빈농층을 포함한 평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여 참주가 된, 아테네의 장군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가 유명하다. 그는 민중에게 선정을 베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그에게 반대하는 귀족을 추방하고 상공업을 장려하고 시민의 세금부담을 감소시켰으며, 소농들에게 농사자금을 대부하는 등 농업을 장려하고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고 알려져 있다.

후기 참주의 대표적 예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한 틈에 등장한 히틀러 참주이다. 그는 포푤리즘 정책을 통해 노동자의 절대적인 지지하에 전체주의 국가를 수립하고 제국의 총통이 된 이후 전쟁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하지만 참주중에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하였지만 경제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여 그 동력으로 서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권력을 유지한 참주도 있었다. 대표적인 참주가 한국의 박정희 참주다. 그는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을 통해 자신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정통성이 없는 참주정에서 세습은 참주정체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노출시킨다. 때문에, 참주들은 자신들의 정적들과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폭력과 억압기제들을 동원하게 되면서, 점차 전제정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북한 김정은 체제는 뭐라 명명해야 할까? 전형적인 참주정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형식적으로만 민주공화국이고, 실질적인 내용으로는 민주적인 공화제를 운영하지 못하는, 그렇다고 군주국도 아니면서 군주국 같은 방식과 내용으로 운영되어, 형식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운영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즉, 김정은은 북한 국호가 왕국이 아닌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비합법적인 세습과 숙청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여 군주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전기 참주의 모습이라면, 세습과 숙청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은 점차 후기 참주의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는 '귀족정 성격이 강한 공화정'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격은 참주정일까? 우선 비합법적인 쿠테타가 아닌 대의제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점에서 참주정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국정원의 선거개입문제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의 '상관성'은 있으나 아직까지 박근혜 세력이 부정선거를 일으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했다는 '인과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충분치 않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유년시절과 리더십 스타일을 보았을 때, '귀족정 성격이 강한 공화정'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이라면, 장하나, 양승조, 유시민의 언사는 지나치게 과한 부분이 있다.

박근혜 정부를 '민주정 성격이 부족한 공화정'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참주정이라고 가정하고 비판했던 일련의 태도들은 오히려 '민주정'적 태도라기보다는 '중우정'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석기 사건과 장성택 사건을 동일하다고 본 것은 참주정과 공화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반지성-중우정치의 예이다.

그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해서도 특검조사와 국정원 개혁을 하지 않으면 참주정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논조로 소통이 가능한 매너와 언어로 비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도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참주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국정원 개혁과 특검을 수용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낡은 구도들

그렇다면 우리시대의 귀족과 평민의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 민주공화정이라는 체제는 단시간에 단번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시간속에서 좌충우돌의 체제 순환을 겪으면서 성찰적 테제로 등장하였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최장집 교수가 제기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는 화두처럼 지나치게 '민주대 반민주 구도' 혹은 '노동이 없는 민주주의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라는 시각으로 민주주의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서 이것을 신비화하거나 추상화하여 민주화 이후를 걱정한 측면이 많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민주화 이후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빠지고 중우정으로 빠질 경우 참주정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치고 만다. 이러한 부패와 타락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정'을 제대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상황에서는 민주 대 반민주 혹은 보수 대 진보 구도는 여러 모로 낡은 구도에 해당한다. 이른 바 '진영논리'는 진보를 더욱 진보적으로 보수를 더욱 보수적으로 만드는 이념적 양극화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만들어 정치불신을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정을 완벽한 체제라고 미화하는 관점, 민주정을 다른 정체 특히 공화정과 비교 논의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민주정을 완벽한 체제라고 미화할 경우,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승만 체제가 어떻게 전제정으로 전락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민주대 반민주 구도하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가지는 이중성의 문제 즉, 쿠테타와 폭압에도 불구하고 그가 했던 경제개발정책과 새마을 운동, 부패청산 등의 파퓰리즘 정책이 왜 지금까지 많은 서민들한테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민주대 비민주 혹은 진보 대 보수의 대립구도에서 오는 극단적인 시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한국의 민주정을 지지하는 진보세력(민주진보)은 북한의 참주정을 지지하는 종북세력을 민주진보로 오해하여 심정적으로 옹호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민주화 이후는 민주세력이 참주세력을 타도했기 때문에, 민주세력과 공화세력이 참주세력의 발흥을 억제하는 가운데 민주공화국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 구도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세력과 공화세력은 개인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되,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특혜를 제공하는 공적인 제도인 의원과 정당에 참주정 세력이 접근하여 득세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는 합의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의 나라만도 공화의 나라만도 아닌 민주와 공화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함께 사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채진원님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 교수입니다.
#HTTP://BLOG.NAVER.COM/J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섭지코지 한가운데 들어선 건물... 주민들이 잃어버린 풍경
  2. 2 우리 부부의 여행은 가방을 비우면서 시작됩니다
  3. 3 '우천시' '중식' '심심한 사과' 논란, 문해력만 문제일까요?
  4. 4 '급발진'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알고 보니
  5. 5 월급 37만원, 이게 감사한 일이 되는 대한민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