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4
인간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작게는 가족, 마을 그리고 국가를 이루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가리켜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칭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그 무리 안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이러한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란 필연적이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이해관계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며 따라서 갈등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소통'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박근혜 정권이 통치하는 현재 가장 부각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이란 단순히 '대화'뿐만 아니라 '합의'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를 지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에 관해 "소통은 수단이고 목적지는 신뢰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더 소통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통안민(以通安民)이라 하여 소통으로 백성을 편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소통능력은 어떨까? 그의 소통능력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다.
2013년 12월 9일. 코레일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의 주된 이유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반대였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코레일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약 8000여 명을 직위해제하고, 190명 이상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였다. 그 이후 파업을 철회시키기 위한 정부와 코레일의 압박은 더욱 심화되었다.
철도노조 간부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였으며, 77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미래를 기약 못 한다. 민영화 아니라고 누차 이야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불법파업을 이어갔는데 이런 상황에서 직접 만나는 방식의 소통이 가능한 것인가 생각했다." 라고 하며 소통과 타협의 의지가 없음을 공언하였다. 그렇게 강 대 강으로 노조와 코레일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협상테이블은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12월 22일.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체포영장 집행대상인 핵심간부들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확보한 경찰은 체포조를 포함한 5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민노총 건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진입을 막는 조합원과 노조원에 대해 최루액을 발사하며, 유리문을 깨고 강제 진입하였고 그 과정에서 진입을 막는 조합원 10명을 연행하였다.
12월 26일. 민주노총 당사에서 탈출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 부위원장은 조계사로 피신하여 조계종에 중재를 요청했다. 조계종의 중재아래 철도노조의 파업 이래 처음으로 최연혜 코레일사장과 실무교섭이 시작됐다. 그러나 실무교섭이 시작된 지 30분 만에 현오석 부총리이자 기획재정부 장관은 "투쟁에 밀려 국민 혈세 낭비하는 협상은 없을 것" 이라 발표하면서 대화의지가 없음을 드러냈고, 실무교섭이 끝난 직후 최연혜 사장은 12시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12월 30일. 철도파업 22일째 극적으로 파업이 철회되었다. 노조의 장기파업에 대처하여 여야 의원들이 모여 국토 교통위 산하의 철도산업발전 등 현안을 다룰 소위를 구성에 합의했다. 이 합의안에는 소위 구성 시 파업을 철회하고 복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여야 의원들과 노조의 소통을 통해 파업은 철회되었다.
위의 사례는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화된 반면 대화의 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음의 경우를 보자.
밀양 송전탑 사건은 2007년 11월, 정부가 신고리 원전-북경남변전소에 이르는 756㎸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승인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 이후로 2011년 5월∼7월 밀양주민과 한전간의 대화위원회를 운영하여 18차례 대화가 있었다. 하지만 2012년 1월16일 한전의 하청업체는 50명의 용역을 풀었고 그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한데 분노한 고(故)이치우 할아버지가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분신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2012년 3월 7일 송전탑 공사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6월 11일 재개되었다. 그 후로 많은 대화의 기회가 있었다.
2012년 10월 9일. 송전탑 건설 반대 대책위원회와 한전간의 실무협의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3회에 걸쳐 대화가 진행된다. 2013년 2월 18일. 조경태 민주당 의원의 주관 아래 주민과 한전간의 1차 토론회가 열리고 3개월 동안 6번에 걸쳐 토론이 진행된다.
2013년 5월 15일. 많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한전은 공사재개 방침을 공식화하고 5월 20일 공사재개를 시도하다가 주민들과 대치하여 공사를 잠정 중단한다.
2013년 9월 11일. 정홍원 총리가 밀양을 방문하여 갈등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반대 주민들은 보상안 발표를 유보하는 조건을 수용해 면담 자리에 참석했다. 보상안을 확정하고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곧 공사를 수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정홍원 총리가 참석한 자리에서 한전은 '밀양송전탑 갈등해소 특별지원협의회 전체회의'를 열어 전체 보상금 185억 원 가운데 74억 원을 개별 세대에 직접 지급하고, 나머지는 마을 숙원사업에 사용하도록 하는 보상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주민들의 불참으로 결국 대화의 장은 열리지 않았다.
2013년 10월 2일. 주민들의 반대 속에 공사가 강행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많은 대화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한전과 주민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소통에 임하는 자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계삼 밀양765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대화의 장에서 한전과 마주했지만 한전은 공사 중단 못 하겠다. 주민들이 공사를 막으면서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주민들에게 모욕만 줬다고 말했다. 또한 개별보상안을 따르겠다고 하고, 노선 변경이나 지중화 문제도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하였다.
수많은 한전과 주민들 간의 대화가 있었으나 합의가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한전은 공사를 강행하였고, 주민들은 공사를 막는 과정에서 2명이 자살을 하였고, 수많은 주민들이 부상을 당해 치료 중에 있다. 대화의 장이 많이 열린다고 해서 전부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어느새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대통령의 소통능력에 대하여 여야 안팎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정현 홍보수석은 "원칙대로 하는 것에 손가락질하고 불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런 불통"이라 말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통'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불법으로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는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한 것인데, 소통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 말하면서 여전히 소통의 부재를 보여줬다.
민주주의에는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소통에 대한 노력 없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데 대한 비판을 비정상적인 행동이라 규정하고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태도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갈등 해결 방식이다.
<맹자>에 민귀군경(民貴君輕)이란 구절이 있다. '백성이 가장 존귀하고, 사직(정부)은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라는 뜻이다. 또한 <논어>에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백성의 덕은 풀이라, 바람이 불면 풀은 자연스럽게 눕는다.'라고 하였다. 즉 대통령이 자신을 낮추어 소통의 의지를 갖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국민은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2014년은 소통으로 신통방통한 한해가 되길 바란다. 응답하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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