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규제개혁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지난주 청와대에서는 한 편의 드라마가 연출됐다. 드라마 제목은 규제개혁을 위한 끝장토론! 주연은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2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면이 무려 7시간이나 생중계되는 초대형 이벤트였다. 장관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대통령이 나서서 민원인들의 역성을 드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거기다가 '규제비용총량제', '네거티브 규제방식', '효력상실형 일몰제' 등 그럴듯한 해결책까지 제시되면서 드라마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혹자들이 비판하는 이러한 '극장식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다시 거론할 생각은 없다. 방송과 언론을 장악한 정부·여당의 추태가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젠더'이다. 이번에 정부가 세팅한 어젠더는 '규제개혁'이다. 그렇다면 왜 또 다시 규제개혁인가? MB 정부 때부터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되고 있는 레퍼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또 다시 '규제개혁'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역공을 의미한다. 공무원들이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만든 불필요한 행정 규제들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로 없앨 수 있다. 굳이 드라마를 찍는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없애고 싶은 것은 이러한 규제들이 아니라 바로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탐욕을 견제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규제들이다. 이미 입법이 이루어진 경제민주화 규제들을 무력화 시키고 입법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들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이벤트의 진짜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에게 '경제민주화'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도 같은 것이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다 보니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는 여기 저기 찢어지고 터지고 너덜너덜하게 돼 버렸다. 규제완화나 규제철폐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핵심 이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줄·푸·세 정책'부터 이어져 오던 자신의 신자유주의 DNA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저작권을 도용해 지난 대선에서 재미를 톡톡히 봤지만 더 이상 재벌과 기득권세력의 의심을 받으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경제민주화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점을 이번에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공약파기 책임에 수세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인 되치기가 가능한 '규제개혁'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보다는 규제개혁이 살 길이다'라는 여론호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영리하게도 공격 대상을 국회로 삼았다. 자신의 공약파기를 가장 앞서서 지적할 국회를 오히려 '경제회복의 족쇄'로 규정해 버렸다.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각종 입법을 '암 덩어리'로 규정하고 이를 도려내자고 나선 것이다. 사실 이번 끝장토론의 주요 타깃은 일반 시청자도 공무원도 아닌 '국회의원'들이었다. 앞으로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의원들은 암 덩어리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규제개혁은 공약파기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얄팍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규제개혁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첫째, 공무원들의 존재감 과시와 부처 간 권한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잘못된 규제는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또한 소상공인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엉뚱한 규제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소해야 한다. 입법취지와는 상관없이 하위법령을 통해 행정부처의 권한을 강화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각종 규제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극장식 쇼가 필요 없는 일들이다. 공직기강 확립과 행정효율화 차원에서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을 발동하면 된다. 내일이라도 당장 시행하면 될 일들이다.
둘째, 규제 문제를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마저 빼앗는 규제와 너무 한 쪽으로 쏠려 있는 것들을 나누기 위한 규제는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없애야 하지만 후자는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특히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힘없는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침해 받을 수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욱 촘촘한 규제가 필요하다. 금융이나 공정거래 분야가 바로 그런 분야다. 거대자본과 전문지식을 동원해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 재벌과 기득권 세력들이 규제개혁 바람몰이에 슬쩍 올라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셋째, 박근혜 정부는 국내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의 돌파구를 엉뚱한 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 저조한 국내 투자와 그에 따른 고용시장 침체의 원인을 '규제'에서 찾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진단이다. 규제 없는 작은 정부를 추구했던 신자유주의는 결국 전 세계적인 불황을 몰고 왔고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정책과제는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적극적 배분정책이다. 정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기반을 둔 경기회복을 경제정책의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아직도 낙수효과의 환상에 젖어 재벌과 대기업 퍼주기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박근혜 정부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사족을 달자면,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입법으로 규제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규제를 의미한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의원입법에 규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이 무슨 해괴한 논리란 말인가? 자신들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정부·여당은 규제개혁 여론몰이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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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왜 '규제개혁'을 들고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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