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체육관 뜨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세월호 침몰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이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뜨지 못하고 있다.
이희훈
새벽 2시 무렵, 자원봉사자들이 체육관 입구 분리수거통 앞에서 쓰레기를 분류해 담는 동안 가족들이 있는 1층의 한 귀퉁이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의 흐느낌과 탄식은 수시로 체육관 이곳저곳에서 짧게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다.
진도체육관 밖에는 작은 호수가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관계자와 언론, 봉사자 등이 뒤섞인 체육관의 번잡함을 벗어나 이곳에서 잠깐씩 시간을 보낸다. 23일 오후 4시쯤,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무릎을 가슴에 바싹 끌어안은 자세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호품으로 나눠준 회색 운동복 상하의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많이 울어서인지 몹시 부어있었다.
자원봉사자가 음료수를 권하자 사양하더니 "이제 안산 간다"고 짧게 말했다. 아이를 찾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낮에도 그녀는 체육관에 있었다. "안산 가시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신상정보가 비슷해 헷갈린 것 같다"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다른 애는 다 나왔거든. 근데 우리 애만 아직 안 나왔어. 다른 애들은 다 왔는데…."친구들은 대부분 발견이 됐다는 얘기 같았다. 시신이라도 찾아 떠나는 가족이 계속 늘고 있는 체육관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처절할지, 떨리는 목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후벼 팠다.
24일 오전 6시. 체육관 입구 대형게시판에 A4 용지가 몇 개 더 붙었고, 사망자는 159명, 실종자는 143명으로 기록됐다. 구조자수는 변함없이 174명에 멈춰 있었다. 게시판 주변에는 몇몇 가족들이 휴대전화를 쥐고 말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날 좋은데 투입 잠수부 둘 뿐, "내 새끼 저기 있는데..."자녀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절망과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바뀌면서 체육관의 분위기는 시시각각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같은 날 낮 12시. 실종자 가족대표인 듯한 50대 남성이 단상에 올라섰다.
"오늘 잠수부가 두 명밖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말합니다."얘길 듣던 가족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몇이 먼저 담요와 외투 등을 들고 일어섰다. 물살이 약하고 날씨도 좋은데 잠수부가 두 명밖에 들어가지 않은 경위를 진도군청에 가서 따지고, 민간 잠수부를 대거 투입해달라고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남은 사람은 다 가야지. 이제 우리뿐이야.""자, 갑시다!"체육관에 있던 가족 중 절반 정도가 빠져나가고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이 주로 남았다. 베트남 사람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남녀 2명은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두리번거리다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 와중에 한 실종학생의 어머니는 유전자(DNA) 검사로 아들의 시신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짐을 챙겨 달려 나갔다. 50대로 보이는 그녀는 위아래 회색운동복을 입었고 파마한 머리가 몹시 헝클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원래 우리 애가 손에 팔찌를 안 했었거든. 내가 그 팔찌가 너무 이상한 거야. 팔찌만 알아봤어도…. 000번이면 한참 전인데 내가 내 자식도 몰라보고..."푸석한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그녀는 연신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으려는 듯 손으로 입을 감싸면서 시신안치소로 가는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고 절망하며 떠나는 이의 뒤편. 여전히 게시판 앞을 서성이면서 "날씨가 좋은데 왜 구조자가 없냐"고 누군가와 울먹이며 통화하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