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공도 도망간 '귀신 아파트'... 거기 제가 삽니다

[공모- 나는 세입자다] 재건축 예정 아파트의 세입자가 되기까지 동분서주했던 분투기

등록 2014.10.29 08:42수정 2014.10.2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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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거주중인 아파트의 전경.  현관 입구가 왠지 음산하다.
현재 거주중인 아파트의 전경. 현관 입구가 왠지 음산하다.신종철

부모님의 주택에 얹혀살며 편하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집밥을 먹고, 내 방 한 칸 차지하며 살던 내가 결혼한 지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처음 결혼이란 걸 생각했을 땐 멋있는 프러포즈와 함께 예식장 예약을 마치면 모든 게 끝인 줄로만 알았다. 인터넷 결혼 관련 커뮤니티에도 "멋진 프러포즈 받았어요", "우리 예신(예비신랑)이 감동을 줬어요"라는 제목의 프러포즈 관련 글로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보니 대한민국 신혼부부, 특히 남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가 있었다. '집'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을 5개월 앞두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사회 경력도 그리 길지 않은 나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다. 하지만 전셋집은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었다. 신혼이라 굳이 큰 집은 필요 없다. 작은집 전세부터 시작해 큰 집으로 늘려가는 재미, 이것이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 아니었던가.

"조그만 전셋집 하나 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

이런 생각을 하며 먼저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섹션으로 들어갔다. 살고 싶은 지역의 전세가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직장이 서울이니, 집도 서울이어야지


처음 집을 구할 때 1순위 지역은 당연히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직장 출퇴근도 서울에서 하는 내가 인근 수도권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내와 맞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봤다. 하지만 아뿔싸, 비싸도 너무 비쌌다. '멘붕'에 빠질 새도 없었다. 도심은 아니더라도 서울 외곽 지역으로 가면 괜찮을 거라며 당시 예비신부였던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서부지역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 지역 부동산도 이리저리 많이도 다녔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문 예약을 잡아놓고 부동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부동산에서는 대출을 받으면 된다고 했지만, 결혼 초반부터 많은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방문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그 매물은 이미 계약이 끝났거나, 실체가 없는 매물이 많았다. 신축 빌라는 깔끔하고 주차공간도 넉넉했지만 역시 돈이 문제였다.

가격에 맞는 집을 보러 가면 해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주차가 불편하다 못해 불가능한 집도 있었다. 너무 노후되서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점 초조해졌지만 "이렇게 많은 집 중 설마 우리 두 식구가 살 집이 없을까"하며 다시 차근차근 찾아봤다.

원룸이라도 거실이 분리된 형태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이때부터 원룸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는 "신혼에는 조그만 집에서 둘이 딱 붙어 있어야 재미나지"라고 설명했다. 마침 광화문 인근 서촌에 우리에게 딱 맞는 조건의 원룸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고 마음에 들어 바로 전화를 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차를 끌고 그 집 앞까지 갔으나 갑자기 당초 홍보와 달리 전세가 아닌 월세라는 설명을 들었다. 부동산에서도 집주인으로부터 그날 갑자기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나마 월세 계약도 오전에 끝났다며, 부동산에서는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맥이 쭉 빠지고야 말았다. 비오는 날 생쥐 꼴이 돼 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전화라도 좀 주지….

경기도면 어때, 교통만 좋으면 됐지

몇 번에 걸친 실패를 맛 본 후, 이제는 서울이 아니라 인근 경기도로 눈을 돌렸다.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라면 교통도 편해. 출퇴근도 용이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다시 한 번 아내를 설득했다. 군소리 없이 따라준 아내에게 지금도 정말 고맙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복도식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와의 거리도 가깝고 위치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에 방문해서 내가 들은 첫 마디는 "요새 이 지역 전세가가 많이 올랐어요"였다. 인근 서울지역에 기업체가 입주해 수요가 증가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이유로 전세 매물도 거의 없고, 있는 매물도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매매를 권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무리한 대출을 하면서 집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실평수 15평 남짓 되는 집을 구입했다가 애라도 생기면 나중에 팔고 나가기가 겁나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와중 직장 동료가 말을 건넸다.

"우리 동네로 와! 오래됐는데 전셋값도 싸고 전철역도 바로 앞이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전철역이 바로 앞인데 값이 싸다니 그런 곳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쉬는 날 바로 그 지역을 방문했다. 정말 전철역부터 걸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집이었다.

전세가가 싼 이유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으로 '재건축'이 추진 중인 곳이었다. 인근 부동산에 들러 전세 매물이 있는지 확인 후 바로 집을 보러 갔다. 하지만 도착 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5층짜리 아파트는 입구부터 그 위엄을 뽐냈다. 16평짜리 아파트의 외벽은 대체 언제 칠을 한 것인지 다 떨어져 나갔다. 5층짜리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는 사치였고, 더군다나 5층 중 5층이었다. 계단으로 5층을 올라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던 나는 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며 등산 아닌 등산을 해야 했다. 그렇게 보러간 집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나무로 된 새시와 언제 설치됐는지 모를 너덜너덜한 문이 나를 맞았다. 이미 살고 있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너덜너덜한 싱크대, 욕실과 세탁실에 넓게 핀 곰팡이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배하고 장판 새로 하면 괜찮아요"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른 매물을 보여 달라고 했으나 여기저기 알아봐도 매물이 많지 않았고, 수리가 좀 된 집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일 주일간 아내와 상의했다. 결국 그 정도 역세권에 그만한 가격은 또 없다며, 다시 부동산을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처음 봤던 그 집을 계약했다.

베란다 문   세월이 지나 나무 밑바닥이 썩어 롤러가 움직이질 않았다. 나무를 덧대고 롤러를 새로 달아 주었다.
베란다 문 세월이 지나 나무 밑바닥이 썩어 롤러가 움직이질 않았다. 나무를 덧대고 롤러를 새로 달아 주었다.신종철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의 비애, 고쳐서 살지 뭐

계약을 한 것은 결혼 세 달 전이었지만 입주는 결혼 한 달 전에야 이루어졌다. 기존 세입자의 계약기간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입주 전까지 이 집을 고칠 부분들을 계획하고 각 방, 주방, 거실의 면적을 실측했다. 싱크대는 도저히 그냥 사용할 수 없어 계약 당시 집주인에게 새로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단번에 거절 당했다. 싱크대 금액의 일부를 지원 받는 정도로 합의 봤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일 테다. 이제 재건축을 하게 되면 철거해야 할 집이다. 집주인으로서는 철거할 집의 내부 시설을 돈을 들여가며 전면 교체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비를 들여 도배, 장판, 싱크대를 모두 새로 했다. 그 외에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설치했다. 혼자 혹은 아내와 같이 한 작업 내역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모든 전등, 스위치 교체, 베란다 마루 깔기, 욕실 수납장, 현관 타일, 블라인드 설치 등 새시만 빼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바꿨다. 오래된 문의 문짝을 떼어내어 롤러를 교체했더니 그제야 제대로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집 내부의 페인트를 혼자 칠할 수는 없어 업자를 불렀다. 집을 방문한 페인트공은 지저분해도 너무 지저분해 도저히 못하겠다고 혀를 내두르며 그냥 가려고 했다. 수고비를 조금 더 드릴 테니 제발 해달라고 겨우 사정한 끝에 페인트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페인트 칠 도망가려는 페인트 업자에게 사정해서 완성했다.
페인트 칠도망가려는 페인트 업자에게 사정해서 완성했다.신종철

이렇게 우리가 살 첫 번째 집에 가구가 들어오며 제법 집의 모양을 갖췄다. 이때만 해도 재건축 진행이 지지부진해 이 집에서 4~5년 정도는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 입주할 때 부동산에서도 재건축 진행이 늦으니 아직 한참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세입자의 말을 들어보면 10년 정도 이 집에서 거주했으나 전세금의 상승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집주인은 세입자의 전세금 증액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재건축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재건축이 늦어진다면 이사 다닐 걱정 없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4~5년이나 살 곳인데 깔끔하게 살 수 있다면야... 비록 세입자의 처지지만 이 정도 수리비는 감내할 수 있었다.

싱크대와 전등   새로 교체한 싱크대와 혼자 설치한 전등. 세입자가 싱크대까지 설치하는거 보셨나요?
싱크대와 전등 새로 교체한 싱크대와 혼자 설치한 전등. 세입자가 싱크대까지 설치하는거 보셨나요?신종철

9·1 부동산 대책... 그게 뭔가요?

그런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이 일사천리로 진행돼 오는 2015년 후반기면 이주 시기가 잡힐 것이라는 소식을 최근에야 듣게 됐다. 물론 확정된 소식은 아니지만 내년에 갑자기 이주 통보를 받게 된다면 서러울 것 같다. 그때 가서 부랴부랴 집을 구하려면 또 다시 신혼집 구하듯이 동분서주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매매가 대비 전세금이 20% 수준인 이 집을 벗어나기에는 솔직히 말해 두렵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 헤드라인에는 '전세금 상승'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매매가의 80%를 육박하는 집이 널렸다. 매매가의 20%, 그것도 전세대출을 끼고 살고 있는 내가 이 집을 떠나서 갈 곳이 과연 존재할까.

그래서 차근차근 준비에 나섰다. 얼마 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주택들을 알아보고 청약신청을 하고 있다. 추후 분양 전환되는 임대주택과 경기지역의 공공분양 주택들이 대상이다. '10년 공공임대 주택'은 최소한 10년간은 내 집처럼 살 수 있으니 우리 같은 처지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10년 후에 분양을 받을 수도 있다. 보증금은 지금 살고 있는 전세금으로 대체하면 될 것이고 월세는 나로선 생소하지만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 수준이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지난 5월부터 네 군데 청약에 나섰다. 모두 경기권으로 세 곳은 공공임대주택, 한 곳은 공공분양 주택이다. 결론은 전패였다. 아직 조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장 최근에 청약 신청했던 경기권 공공분양 주택은 당첨되기만 하면 이주 시기도 적당했고 대출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했다.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

'9·1부동산 대책'은 정부의 신도시 혹은 미니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택지 공급을 중단하고 기존 주택의 재건축 연한을 낮추는 것이 골자다. 이 정책 때문에 현재 분양중인 택지지구 공공분양 주택으로 수요가 몰린다는 기사를 접했다. 사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 이러한 정책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부동산 대책과 더불어 그 정책과 연계된 분양시장의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좋게 말하면 참 대단한 발전이다.

언젠간 내 집을 갖게 될 날을 그리며

분양시장이니 뭐니... 아직 30대 중반인 내 나이에 어쩌면 너무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이 집에서 생활하기까지 참 많은 일을 겪어 보니, 집 걱정 없이 한 곳에서 거주하는 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급여만으로 생활하기에 녹록지 않은 '서민'이다. 내 집을 갖게 될 날이 과연 오긴 할까. 지금은 그저 먼 미래 일어나길 바라는 '희망'뿐이다.

재건축 예정인 이 집에서 얼마나 거주할 수 있을까. 최대한 이곳에 머물면서 앞으로를 계획하고 열심히 생활하려 한다. 그러다보면 어디에서든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3년 이내 나만의 새 집에서 살겠다는 목표도 있다. 처음 신혼집을 구할 때, 이리저리 알아봐도 안 되던 것이 직장동료의 한 마디로 무언가 풀렸다. 다음에도 생각지 못한 실마리가 될 그런 순간 있기를 기대한다.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이곳의 재건축 사업이 조금 지연됐으면 하는 생각도 몰래 가져본다. 비록 세입자지만 집주인 못지않게 투자를 많이 한 집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전세 #재건축 #91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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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진, IT기기를 좋아하는 소심하고 철 없는 30대(이 소개가 40대로 바뀌는 날이 안왔으면...) 홀로 여행을 즐기는... 아니 즐겼던(결혼 이후 거의 불가능) 저 이지만 그마저도 국내or아시아지역.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유럽이나 미국,남미쪽도 언젠가는 꼭 가볼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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