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거주중인 아파트의 전경. 현관 입구가 왠지 음산하다.
신종철
부모님의 주택에 얹혀살며 편하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집밥을 먹고, 내 방 한 칸 차지하며 살던 내가 결혼한 지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처음 결혼이란 걸 생각했을 땐 멋있는 프러포즈와 함께 예식장 예약을 마치면 모든 게 끝인 줄로만 알았다. 인터넷 결혼 관련 커뮤니티에도 "멋진 프러포즈 받았어요", "우리 예신(예비신랑)이 감동을 줬어요"라는 제목의 프러포즈 관련 글로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보니 대한민국 신혼부부, 특히 남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가 있었다. '집'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을 5개월 앞두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사회 경력도 그리 길지 않은 나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다. 하지만 전셋집은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었다. 신혼이라 굳이 큰 집은 필요 없다. 작은집 전세부터 시작해 큰 집으로 늘려가는 재미, 이것이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이 항상 하시던 말씀 아니었던가.
"조그만 전셋집 하나 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이런 생각을 하며 먼저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섹션으로 들어갔다. 살고 싶은 지역의 전세가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직장이 서울이니, 집도 서울이어야지 처음 집을 구할 때 1순위 지역은 당연히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직장 출퇴근도 서울에서 하는 내가 인근 수도권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내와 맞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찾아봤다. 하지만 아뿔싸, 비싸도 너무 비쌌다. '멘붕'에 빠질 새도 없었다. 도심은 아니더라도 서울 외곽 지역으로 가면 괜찮을 거라며 당시 예비신부였던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서부지역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 지역 부동산도 이리저리 많이도 다녔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문 예약을 잡아놓고 부동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부동산에서는 대출을 받으면 된다고 했지만, 결혼 초반부터 많은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방문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그 매물은 이미 계약이 끝났거나, 실체가 없는 매물이 많았다. 신축 빌라는 깔끔하고 주차공간도 넉넉했지만 역시 돈이 문제였다.
가격에 맞는 집을 보러 가면 해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주차가 불편하다 못해 불가능한 집도 있었다. 너무 노후되서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점 초조해졌지만 "이렇게 많은 집 중 설마 우리 두 식구가 살 집이 없을까"하며 다시 차근차근 찾아봤다.
원룸이라도 거실이 분리된 형태라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이때부터 원룸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에게는 "신혼에는 조그만 집에서 둘이 딱 붙어 있어야 재미나지"라고 설명했다. 마침 광화문 인근 서촌에 우리에게 딱 맞는 조건의 원룸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고 마음에 들어 바로 전화를 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차를 끌고 그 집 앞까지 갔으나 갑자기 당초 홍보와 달리 전세가 아닌 월세라는 설명을 들었다. 부동산에서도 집주인으로부터 그날 갑자기 통보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나마 월세 계약도 오전에 끝났다며, 부동산에서는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맥이 쭉 빠지고야 말았다. 비오는 날 생쥐 꼴이 돼 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전화라도 좀 주지….
경기도면 어때, 교통만 좋으면 됐지몇 번에 걸친 실패를 맛 본 후, 이제는 서울이 아니라 인근 경기도로 눈을 돌렸다.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라면 교통도 편해. 출퇴근도 용이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을 거야."다시 한 번 아내를 설득했다. 군소리 없이 따라준 아내에게 지금도 정말 고맙다.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복도식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와의 거리도 가깝고 위치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에 방문해서 내가 들은 첫 마디는 "요새 이 지역 전세가가 많이 올랐어요"였다. 인근 서울지역에 기업체가 입주해 수요가 증가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이유로 전세 매물도 거의 없고, 있는 매물도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매매를 권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무리한 대출을 하면서 집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실평수 15평 남짓 되는 집을 구입했다가 애라도 생기면 나중에 팔고 나가기가 겁나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와중 직장 동료가 말을 건넸다.
"우리 동네로 와! 오래됐는데 전셋값도 싸고 전철역도 바로 앞이야."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전철역이 바로 앞인데 값이 싸다니 그런 곳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쉬는 날 바로 그 지역을 방문했다. 정말 전철역부터 걸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집이었다.
전세가가 싼 이유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으로 '재건축'이 추진 중인 곳이었다. 인근 부동산에 들러 전세 매물이 있는지 확인 후 바로 집을 보러 갔다. 하지만 도착 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5층짜리 아파트는 입구부터 그 위엄을 뽐냈다. 16평짜리 아파트의 외벽은 대체 언제 칠을 한 것인지 다 떨어져 나갔다. 5층짜리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는 사치였고, 더군다나 5층 중 5층이었다. 계단으로 5층을 올라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던 나는 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며 등산 아닌 등산을 해야 했다. 그렇게 보러간 집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나무로 된 새시와 언제 설치됐는지 모를 너덜너덜한 문이 나를 맞았다. 이미 살고 있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너덜너덜한 싱크대, 욕실과 세탁실에 넓게 핀 곰팡이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배하고 장판 새로 하면 괜찮아요"라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른 매물을 보여 달라고 했으나 여기저기 알아봐도 매물이 많지 않았고, 수리가 좀 된 집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일 주일간 아내와 상의했다. 결국 그 정도 역세권에 그만한 가격은 또 없다며, 다시 부동산을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처음 봤던 그 집을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