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리 만화가 "내년이면 만화를 그린 지 20년"

장도리 박순찬 작가, 신문만화로 본 한국 사회

등록 2014.11.05 14:53수정 2014.11.0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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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만화로 본 한국사회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는 박순찬 작가"
"신문만화로 본 한국사회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는 박순찬 작가"정수인

"결국 풍자라는 것은 없는 것을 꾸며내고 과장해서 비틀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압축해서 담아내는 것이다. 현실을 가능하면 정확하게 축약해서 담아내는 것이 만화다."

4컷 만화에 담긴 대한민국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SNS를 달구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 회자되는 만화가 있다. 바로 '장도리'다. 1995년부터 <경향신문>에 게재된 장도리는 사회상을 담아내는 만화로, 내년이면 탄생 20주년을 맞게 된다.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작가가 정의당을 방문했다.

박순찬 작가는 지난달 27일 진행된 '4컷 만화에 담긴 대한민국' 강연에서 신문 만화의 역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풀어냈다. 박 작가는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시사를 다룬 만화들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비교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만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을 설명했다.

시사만화라는 용어를 진단하다

 "박순찬 작가가 정의당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박순찬 작가가 정의당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정수인

박순찬 작가는 강연의 첫 시작을 시사만화라는 용어에 대한 진단으로 열었다. 그는 시사만화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어라는 것은 소통하려고 쓰는 것인데 때로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경우들이 있어 일부러 용어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있게 된다. 특히, 권력집단에서 그런 용어를 많이 만들어 사용하는데 시사만화라는 용어는 만화라는 용어를 쓰기 싫어서 포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화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장르이다. 그런데 시사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다른 만화의 범위가 한정된다. 신문이 담는 만화가 비유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시사를 다루기 때문에 그런 용어를 만들어냈겠지만, 좋은 용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만화를 비하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 대학생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고 아껴왔다는 박 작가의 만화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회에서 만화라는 장르는 주류 문화로 대접을 받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 이후 만화라는 장르가 들어오긴 했지만 제대로 성장하고 숙성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군사 독재 시절이 워낙 오랫동안 겹치면서 위축, 자기검열, 정치권의 압력 등이 만화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이런 시대적 환경은 만화와 만화가의 설 자리를 좁히는데 큰 영향을 준다.


물론 지금은 만화에 대한 신문 언론 환경, 위상과 대중 인지도가 크게 달라졌다. 박순찬 작가 역시 장도리 만평을 게재할 때마다 그의 작품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화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박순찬 작가는 만화와 영화를 비교하며 만화를 설명한다. 공통점은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이고, 차이점이라면 만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라 점이라는 것이다. 박순찬 작가 자신도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만화는 철저하게 혼자 하는 작업이기에 작가주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장르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역사적 격동기의 만화를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이 되기에 그 시대의 시대상이 어떠한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비교적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풍자라는 것은 없는 것을 꾸며내고 과장해서 비틀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현실을 압축해서 담아내는 것이다. 현실을 가능하면 정확하게 축약해서 담아내는 것이 만화다"라며 작가 자신도 이런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한다. 현 사회에 불고 있는 장도리 열풍은 현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집어내되 과장도 왜곡도 없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작가에 대한 대중의 격려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내 이전에 많은 선배들이 있었다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뜸 '왈순아지매'를 꼽는다. 왈순아지매는 정운경 작가가 1958년부터 2002년까지 44년 간 1만 1천 회 이상 연재한 장수만화이다. "정운경 선생의 4컷 만화의 구성이 당시 만화들 중 가장 뛰어나지 않았나 싶다"며 신문에 4컷 만화를 시작할 때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90년대 중반에 봤을 때도 이 분의 만화는 위트가 살아있고 생생했다. 생활 속에서 일반 소시민들의 생활을 밀착적으로 그리면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보수성향의 만화라고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구호적인 메시지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은연중에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최장수 4컷 만화인 '고바우 영감'을 꼽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은 김성환 선생의 4컷 만화로, 사회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날선 풍자로 유명하다. 권력이 막강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나마 이 시절에는 언론이 권력층과 가까운 입장이기에 언론사에 연재되는 만화들은 어느 정도 은유적인 표현으로라도 다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김성환 선생이 받은 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의 힘

장도리만 20년을 그렸고, 지금은 주 5일이지만 예전에는 주7일을 게재했다. 이쯤 되면 대중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는가로 집중된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에 "알면 다 하지 않겠는가. 모르니까 저도 고생하고 있다."며 유머를 던진다. 이어 진지한 얼굴로 "아이디어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자신이 정리한 결론을 내놓는다.

"저는 만화만 그리고 다른 일은 안 한다. 만화가도 많은 스타일이 있다. 일을 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있고, 만화만 그리는 사람도 있다. 전업 작가가 의외로 힘들다. 전체수로 따지면 많지 않다. 저는 운이 좋아서 신문사에 연재를 하게 되어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그래서 크게 흥행을 기대하며 그리지 않아도 된다. 덕분에 일하는 사람들에서 벗어나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릴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은 아이디어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개념을 벗어나서 형태로 봤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 많이 그리다보면 달라진다. 사람 얼굴만 백번을 그리다보면 사람 얼굴에 눈코입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림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는 것이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자세도 바뀐다."

장도리를 그린 지 어느 덧 20년 그러나 한국 사회는...

 "강연 후 참가자들이 재밌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연 후 참가자들이 재밌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정수인

박순찬 작가가 만화를 그린 지 내년이면 20년이다. "처음 만화를 그릴 때보다 만화의 위상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20년 전 만화의 내용과 현재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태와 시랜드 문제에 대해 작가 자신이 그렸던 장도리 만화를 비교하며 많은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정부의 무능으로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박순찬 작가는 "결국 이 사회는 한발자국도 나아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냐"며 "20년 전 제가 그린 그림들을 봐도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그대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다고 한다.

박순찬 작가는 11월 초쯤 네 번째 장도리 모음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전에 장도리 모음집으로 발간했던 3권의 책들도 큰 화제가 됐다. 특히 이번 모음집은 책의 절반 이상을 세월호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씨랜드 문제도 똑같았다. 도대체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한 발자국도 나아간 것이 없다. 많은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정부의 무능으로 살리지 못했다. 기억 속에 각인을 해야겠다는 의미로 이번 장도리 모음집의 표지는 나무 판화를 직접 제작해서 만들고 있다."

박순찬 작가의 그림은 경계선에 존재한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되 대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작가도 "저는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는 것. 즉, 표현보다 중요한 것이 내용이라 생각하기에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해서 만화를 그리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작가가 그리는 만화를 매일매일 손꼽아 기다리는 팬으로서도 작가의 지금 다짐이 변질되지 않고 변함없는 만화로 매일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장도리 #박순찬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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