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중2병', '졸'의 신호일수도

줄탁동시

등록 2014.11.19 11:44수정 2014.11.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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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닭이 알을 품고 대략 20여 일이 지나면 알 속의 새끼는 바깥 세상을 나가겠다고 알 껍질을 톡톡 쪼게 된다. 이것을 졸(卒)이라 한다. 이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 닭은 새끼가 쪼는 부위를 밖에서 탁탁 쪼아주는데 이것을 탁(啄)이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동시(同時)에 일어나야 건강한 병아리가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사실이다. 바로 졸탁동시(卒啄同時)라는 고사(故事)다.

이 고사에서 중요한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어미 닭이 알 속에 있는 병아리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모든 정신을 알 속에 있는 병아리와 소통하는 데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어떤 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인지를 부모가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런 노력을 통해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둘째는 어미 닭은 절대 병아리가 먼저 알 껍질을 쫄 때까지 알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아리가 어미 닭에게 "나 이제 나갈 준비가 되었어요"라고 외칠 때까지 어미 닭은 묵묵히 기다려 준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먼저 졸(卒) 하기도 전에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해야 한다 하면서 여기 저기를 함부로 탁(啄) 하다 보니까 우리 자녀들은 세상이라는 빛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힘들고 지쳐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의 소통을 힘들어 한다. 심지어는 의학용어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중2병'이라는 병명을 만들어 놓고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으레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중2병'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부모들이다. 그래서 멀쩡한 아이들도 중학교 2학년만 올라가면 당연히 반항해야 하고 주위의 이야기에 귀를 닫아 버려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은 자녀와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한숨 쉬며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기 일쑤다. "우리 애들하고는 대화가 안 통해요"라고. 과연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대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화(對話)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이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되어 있다. 대화(對話)에서의 대(對)자는 '마주하다'는 의미를 지녔고 화(話)자는 '말하다, 이야기하다'의 의미를 지녔기에 정확한 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누가 듣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바로 서로 마주 앉은 당사자들이다. 즉, 대화라는 것은 상대가 하려는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한다거나 내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떠들어 대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협상 내지는 설득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서로 마주 앉은 쌍방이 대화를 하고 난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대화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아마도 많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시도하는 대화는 자녀에게는 대화로 받아들여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녀들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를 부모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너의 미래를 위해서다'라는 말로 여기 저기를 탁(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들이 때로는 반항을 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답답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쩌면 우리 자녀들이 진정으로 소통을 원한다는 졸(卒)이라는 신호 인지도 모른다. 그런 신호를 그저 '중2병'이네 하고 치부해 버리지 말고 귀 기울일 때 자녀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졸탁동시(卒啄同時) #대화 #소통 #중2병 #반항,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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