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빚내서라도 무상보육 책임지겠다"지난해 9월 5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중단위기에 처한 "0~5세 우리 아이들 무상보육을 위해 서울시가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밝히는 모습.
남소연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재의 무상보육 관련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교육부가 신청한 누리과정 예산 2조 2000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2015년 예산편성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에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9월 18일 성명을 내어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지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전쟁' 2라운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상대는 바뀌었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1라운드)들에서 각 시도교육감(2라운드)으로 말이다.
본질을 벗어난 갈등의 양상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 선언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고도로 계산된 홍준표의 '돌출선언'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교육감들에게 무상급식 예산을 활용하여 무상보육 예산을 마련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난데없이 무상급식 예산과 무상보육 예산이 서로 대립하게 되는 이른바 제로썸(zero sum) 게임의 논리가 적용되어 나타난 것이다. 급기야 무상보육의 문제를 보육의 당사자인 영유아들과 급식의 당사자인 초중등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복지정책 운용 관련 박근혜 정부의 일관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보편적 복지의 시행과 관련하여 더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유도함으로써 그 목소리가 알아서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대립할 문제 아냐보육의 예를 놓고 보자. 지난 2013년의 '보육대란'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편 가르고,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도 균열을 내는 편 가르기 방식이었다. 이번 2015년 무상보육 예산 관련 갈등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무상보육 관련 예산안 편성을 둘러싸고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외면한 채, 복지부와 교육부, 혹은 중앙정부와 교육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이 문제의 본질인 양 호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다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사이에 근거 없는 대립 틀(frame)을 만들어서 영유아와 초중등학생, 영유아 부모와 초중등부모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덧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보육에 대한 공공 책임성의 강화와 이를 위한 복지재원의 확보방안 마련이라는, 보육정책 공론장의 본질적인 주제와 관련한 논의는 질식당하고 있다. 공론장이 질식당하는 와중에 이들 본질적인 문제의식들이 시민의 머릿속에서도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증세 없는 보편복지'의 실현이라는 형식논리모순을 공약으로 내던지고 출발한 박근혜 정부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매우 치밀하게 고안한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상보육이 되었든, 무상급식이 되었든 두 가지 모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돌봄 및 교육에 대한 공공 책임의 실현'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대립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공공 책임의 실현은 이들 정책이 원활하게 운용되는데 필수적인 재정확보방안의 마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보편복지' 실현은 허구적 논리대기업에 대한 특혜성 세금감면 철회를 통한 세수확보가 되었든, 사회복지세의 도입이 되었든, 혹은 다른 방식의 보편적 증세가 되었든, 그도 아니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기반 확대가 되었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복지재정 마련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시 보육 및 보편복지 공론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공공보육시설의 확대, 보육교사 신분 안정화 및 처우 개선,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체계의 개선, 보육프로그램의 선진화 등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하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바로 그 기반 위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허구적인 대립, 절대적인 복지재정 확보방안 부재의 문제를 마치 중앙과 지방, 정부와 교육청과의 대립인양 호도하는 소모적인 논쟁, 그리고 '증세 없는 보편복지' 실현이라는 허구적인 논리는 지금 당장 거두어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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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또 같은 싸움... 박근혜 정부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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