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개편을 넘어,개헌을 제대로 말하자> 녹색당 열린토론11월 27일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개헌을 제대로 말하자> 녹색당 열린토론 참가자들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의 발제를 듣고 있다.
이유진
11월 27일 오전 10시, 녹색당 정책위원회와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권력구조개편을 넘어, 개헌을 제대로 말하자> 열린토론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누리에서 열렸다.
여당과 야당 지도부가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화두에 올렸고, 청와대가 나서 '개헌 불가'를 못박는 등 개헌론의 정치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그 속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녹색당, 그리고 진보정치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까? 녹색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 할까? 이번 열린토론은 그 전략을 짜는 첫 번째 자리였다.
토론은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그리고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의 발제로 시작됐다. 후속 토론에는 한상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과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윤현식 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그리고 녹색당 당원들이 참여했다. 사회는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이 맡았다.
발제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놓고 이뤄졌다. 우선 지금 시점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과 정치제도 전반을 개혁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또 개헌 혹은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 개헌과 정치제도 개혁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녹색당과 진보정당, 그리고 시민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뒤를 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개헌이 필요한가?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발제자가 공감했다. 다만 최태욱 교수의 경우 당장의 개헌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을 먼저 시도해야 한다며 개헌에 대해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김종철 녹색전환연구소 이사장은 나라의 근본에 대한 규정인 헌법을 고침으로써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대적인 수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더는 경제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의 정치는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권,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헌법에 대한 새로운 상식을 만들고, 또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합의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을 지적했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주된 시각이다. 반면 최 교수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결국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적 결함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집단들, 특히 약자들을 정치과정에 포괄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사회적 균열을 정치적 균열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한국의 정치제도는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는 노동자,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집단들의 대표성을 보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검토와 개혁이 필요하며 개헌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주장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앞선 두 사람과 큰 이견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 위원장은 "앞서 두 사람 말씀에 모두 동의한다. 다만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한 운동을 펴고 실제로 이뤄내려고 할 때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짜서 연대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헌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는 세 토론자 각각이 약간씩 다른 의견을 드러냈다. 김종철 이사장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새 헌법이 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그는 "대표자들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한 게 정치다. 풀뿌리 민중이 중요한 삶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근본적인 형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최근 삼척에서 있었던 원전 유치 반대 주민투표를 예로 들며,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투표하는 '숙의민주주의'의 정신을 담은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태욱 교수는 헌법 개정 이전에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은 협의주의와 사회적 합의주의가 결합한 합의제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중심의 선거 제도를 비례대표제 중심으로 바꿔야 하며, 그를 통해 양당 위주의 정당 체계를 깨고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포괄의 정치를 통해 서로 다른 정당들이 연립 정부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합의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제도개혁을 통해 복지국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제안이다.
하승수 위원장은 "선거제도의 측면에서 비례대표의 전면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어느적으로 형성 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2020년쯤이 돼야 제대로 된 선거제도개혁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지기 전에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봇물을 탄다면, 그 사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 위원장은 "헌법의 내용, 선거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후에 더 토론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개헌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