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밖으로 나온 인문학, 서울역 앞에 불다

[인터뷰] 불혹의 노숙자 이지화씨, 문학으로 삶을 바꾸다

등록 2015.06.24 17:29수정 2015.06.25 10:23
0
원고료로 응원
인문학도와 인문학과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려는 시도가 대학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딱히 취업처가 없는 인문학과는 예체능 학과와 함께 '폐과 1순위'로 꼽힌다.

반면 인문학 대중 강연은 이러한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상아탑을 벗어나 거리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있는 인문학을 만나보았다.

지난 5월 15일, 서울 숙대입구역 카페에서 이지화(45)씨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에게 상아탑 밖에서 활기를 띄는 인문학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의 삶을 바꾼 '민들레 문학 교실'

한때 서울역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노숙생활을 했던 이씨는 노숙인들을 위한 '민들레 문학 교실'에서 처음 인문학을 접했다. 이씨는 그 곳에서 작품을 배우고 글을 쓰며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서기를 꿈꿀 수 있었다. 2013년에는 제2회 노숙인 민들레 예술 문학 교실에서 <바위섬>이라는 작품이 당선됐다. 동료 노숙인들과 함께 산문집도 펴냈고 이에 대한 상금으로 임대주택 보증금도 받게 되었다.

2014년 그는 조금 더 용기를 내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제공하는 기관인 성프란시스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철학, 한국사, 문학, 글쓰기 등을 배우며 문학의 깊이를 깨닫고 현재는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꿈을 안고 새로운 문학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씨가 공부했던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 설립된 노숙인 '다시서기'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삶의 성찰과 자유를 찾아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사, 글쓰기 다섯 과목을 1년 동안 가르치고, 각 강의는 과목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총 15회에 걸쳐 진행된다.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흔히 의식주(衣食住)에 치중하여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노숙의 장기화나 새로운 노숙인의 발생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자괴감과 관계의 단절, 무너진 자존감 때문에 움츠러들어 있거나 세상에 대해 공격적이었던 노숙인에게 인문학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도록 해주고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노숙인들을 위한 '민들레 문학교실'에서 강연했던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학기 중 대학을 벗어나 새터민과 이주노동자, 이주결혼자, 노숙인, 이주결혼자의 자녀 등을 대상으로 꾸준히 인문학 대중강좌에 참여한다.


김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의 정신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더불어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곧 인문학 정신이라는 이야기다. "여민동락이 없는 사회는 삭막하고, 사회적인 소수자들은 고립될 것"이라며 문학 지식을 축적하고 또 직접 나눌 것을 강조했다.

이지화씨는 자신이 노숙을 하는 동안 머물렀던 서울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사람 하나하나의 삶이 서울역 속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아닌 거리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해지는 인문학은 분명 그들을 움직이고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문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2. 2 김흥국 "'좌파 해병' 있다는 거, 나도 처음 알았다"
  3. 3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4. 4 김건희 여사 연루설과 해병대 훈련... 의심스럽다
  5. 5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