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헝거 게임>에서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우승자들을 중심으로 암울한 현실에 반기를 드는 반란이 일어난다. 영화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의 한 장면.
누리픽쳐스
우리 사회 또한 '확률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모두 '확률 전쟁'이다. 선택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열심히 한다면 나도 마치 '헝거 게임 우승자'처럼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헝거 게임'의 확률의 신이 23명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 확률의 신도 모두에게 미소를 날리지는 않는다.
독일 하노버대학교의 엥겔하트·바그너 교수가 2014년 2월 발표한 토론 논문을 보면, 연구 대상 24개국 중 한국의 '인지상향 이동성(나의 사회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은 가장 높다. 반면 '실제상향 이동성(실제 사회 수준이 올라가는 정도)'은 20위로 하위권이다. 즉, 내가 확률의 신에게 선택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만, 실제 선택받는 이는 극소수란 얘기다. 게다가 사회 비용 지출(Social expenditures)은 24개국 중 꼴찌다.
선택을 받는다 해도 완전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취업만 하더라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면 야근, 사내 경쟁, 상사의 질책 등 또 다른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정을 만들려 해도 높은 집값과 생활비가 그들을 괴롭힌다.
결국 편하게 사는 이들은 애초부터 이런 확률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이들, 즉 <헝거 게임>에서는 캐피톨 시민들, 난민 문제에서는 전쟁이나 불안이 없는 사회의 시민들이다. 우리 현실에서는,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소수의 상위계급이 이에 해당할까.
판타지 소설에서는 이런 암울한 상황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해결한다. 캐피톨에 의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타파해 나간다.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우리는 언제까지 확률의 신이 나의 편이기를 바라고,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착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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