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오마이뉴스
우리는 닮음과 닮지 않음에 대해 배웠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삼각형, 사각형, 원과 같이 정의된 도형의 특징을 익히는 방식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각도와 변의 길이의 비와 같은 정량적인 방식을 통해 닮음과 닮지 않음에 대해 배운다. '노무현과 박근혜는 닮았다'라고 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삼각형과 원이 닮았다는 주장을 듣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나는 주의 깊게 이진우 시민기자의 기사를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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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인간이 사회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특히 철든 사람 또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일에 대해 논한 뒤에 토마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표현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오버랩시킨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현재 아니 꽤 오래전부터 우리는 투쟁진행형이고 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 세대 간 갈등과 다양한 입장차이가 그러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이 정도의 상황인식에 나는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노무현과 박근혜, 원과 삼각형만큼이나 다르다그러나 노무현과 박근혜의 언어의 유사성을 다루는 부분은 실망감이 크다. 앞부분에서 다루었던 "철든 사람에 비추어 볼 때 둘의 언어가 비성숙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식의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단편적인 몇 마디를 끌어와 '사람의 언어'라는 큰 부분을 정의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그 정의에 따라 노무현과 박근혜의 닮음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노무현과 박근혜의 언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다. 나의 기준에서 이는 원과 삼각형이 다름을 증명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밝히고 싶다.
노무현의 언어는 탈권위주의적이었다. 노무현식 말하기는 때때로 생생한 날 것의 형태를 띠었다. "대통령 노릇 못 해먹겠다"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욕먹고 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절, 조중동은 노무현의 말투를 꼬투리 잡아 기사를 써서 공격했다. 그리고 이진우 시민기자의 기사도 그중 하나다.
노무현은 대화와 토론을 통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느 정권도 건드리지 못했던 검사 권력에 정면으로 토론을 걸었다. "막가자는 거죠?"는 그 토론의 일부일 뿐이다. 토론으로부터 노무현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검찰의 중립성이었다. 노무현은 검찰의 상층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검사에게 단 한 통의 전화도 걸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검사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 또는 노력도 없이 "막가자는 거죠?" 한마디로 노무현을 철들지 않은 인간으로 규정하고 박근혜와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건 허무맹랑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의 탈권위주의를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 생각한다.
반면 박근혜의 언어는 철저히 권위주의적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이래 누구와도 대등하게 토론해 본 적이 없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도 박근혜는 보고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러 팽목항에 내려갔다. 그리고 청와대에 올라와 박근혜가 한 말은 "책임을 물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였다. 전형적인 권위주의자다. 권위주의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본인의 책임은 없거나 논외일 따름이다. 다만 쥐고 있는 권위를 휘두를 뿐이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본질이며 박근혜식 언어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