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옥 시집 <西便 門을 나서다>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건지시인선 01로 상재된 첫시집
임영섭
집안의 내력 같은 그의 범상치 않은 마음의 출발이, 어머니의 고생을 떠올리고 누이의 죽음을 맞으면서 갖게 되는 인간 고뇌의 슬픔을, 자비심으로 감싸 안는 자기 극복을 통해 이겨내려 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과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한 '반야용선(般若龍船)'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한다.
보제루 사월의 계단/ 어깨 버리고/ 내 사람 가네//소슬비 쓸고 간 바람/ 벚꽃잎 배를 띄워/ 물결 따라 젓는 손// 한 계단 더 올라/ 붙잡는 그림자는/ 내 사랑의 신기루//기운 탑에 기대는 노을/ 부챗살 머리 풀면/ 마음은 목어//저녁연기 잿빛 수의로/ 홀로선 석등을 휘감고/ 낮은 풍령 소리//절집 사월의 계단/ 어깨 버리고/ 내 사람 가네//사람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눈물겨움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불의와 불합리를 목격할 때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분노는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향한다.
동해의 게야/기어서 나오라//검은 파도 뚫고/기어서 나오라/게야//네 두려움이/바다 속 어둠이고/네 목마름이/한낮의 백사라면//저 높은 설악 넘어/광화의 큰 문으로/게야/기어서 가자(「여름, 1980」전문)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질타의 목울대를 높이기도 한다.
'눈을 뜨고/바람에 벼리는 눈을 보아라/그 속에 볼 수 없던/지워진 눈들이 있으리니/감았던 눈을 떠/망막에 쏟아지는 눈을 보아라('장님의 눈' 일부)'시인은 평소 불심이 깊기도 한데, 그로 인한 상상력의 확장이 불교의 자장에 이끌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어지고 세속과 열반의 세계가 연결되기도 하고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가 되는 법열의 정신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