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5.3항쟁 30주년 기념비를 만지고 있다.
한만송
지난 3일 퇴근 시각 무렵, 인천 남구 주안쉼터공원(옛 인천시민회관)에 백발이 성성한 사람들과 50, 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60대를 훌쩍 넘긴 한 남성에게 "선배 이게 얼마만이야"라면서 반겼다. 곳곳에서 이런 인사와 덕담이 이어졌다.
이들은 30년 전 인천에서 벌어진 5.3 시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꼭 30년 전 이날, 바로 이 자리에선 학생·노동자·시민 2만여 명이 모여 '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 등을 외쳤다. 신군부에 저항한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대규모 시위였다.
이날 시위엔 인천지역 시민과 학생뿐 아니라 서울 등지의 학생·노동자 등도 꽤 참여했다. 이들의 시위는 상당히 과격했고, 당시 지하서클에서 주장했던 '노동해방' '미군 축출' '반미구국' 등의 다양한 구호도 등장했다.
당시 언론은 이들의 이념과 폭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지만, 이들이 요구한 대통령 직선제 등은 외면했다. 이 시위로 129명이 구속되고 60여 명이 지명수배됐다.
이 시위는 1987년 6월 항쟁의 가교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제도권에선 여전히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폭력시위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시위 참가자들에게 '소요죄'를 적용했다. 그로부터 29년만인 지난해, 한상균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소요죄'를 적용받았다.
"5.3 정신은 현재진행형... 작은 차이 극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