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며 회견문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있다.
권우성
언뜻 생각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졌음에도 호남에서 당선되는 기적을 보여준 이정현 의원의 창창한 앞날을 위해, '세월호 참사라는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언론에 협조를 구한 예외적 일' 정도는 묻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역구도 타파,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물결을 온 국민이 너무나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정현 녹취록 파문'은 세월호 참사라는 예외적 상황에서의 청와대 홍보수석의 태도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6월 30일, 사건을 최초 고발한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7개 언론단체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이정현 녹취록' 외에도 이른바 '김시곤 비망록'으로 불리는, '2013년 청와대,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 행위' 34건을 담은 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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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곤 비망록'은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청와대의 보도 개입 정황에 대해 김시곤 전 국장이 재임 시절 작성한 기록으로, 2014년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 개입 의혹을 폭로해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은 데 대한 무효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참고자료이다.
'김시곤 비망록'에는 이정현 의원의 이름이 두 번 언급된다.
(1) "(길환영) 사장이 "내일부터는 '윤창중 사건 속보'를 1번째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하고 이정현 정무수석도 전화를 걸어와 '대통령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주문." (2013.5.13.)
(2) 편집 원안대로 '박대통령, 코리아 시리즈 깜짝 시구' 1건을 5번째로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 1건을 맨 마지막 순서(빽톱) 16번째로 방송함. 그런데 저녁 무렵 이정현 홍보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을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길래 내가 맨 뒤에 편집하는 것은 이른바 빽톱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아서 홀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함. (2013.10.27.)
이 기록은, 이정현 의원이 정무수석 시절에도 '보도 개입 의혹'이 있다는 것,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닌, 단순히 청와대의 성과 강조를 위해서도 뉴스 편성 순서에 '의견 개진'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상적으로 보도에 개입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2013.03.~2013.06.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2013.06.~2014.06.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물론 '비망록'은 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인의 기록이며, 이를 제출하고도 김시곤 전 국장이 지난 4월 29일 KBS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무효확인소송에서 패소했으므로 신뢰도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김도현 부장판사)는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방송의 목적과 공적 책임,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하여야 하는 등 공적 책임을 지고 있고 (중략) KBS의 사장이라 하더라도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시도나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고 판결하며, KBS에 대한 '언론 개입 외압' 사실을 분명히 인정했다.
또한 지난 5월 16일 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길환영 전 사장과 이정현 의원을 함께 고발하며, "길 전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KBS의 보도편성에 개입했고, 이 의원 역시 청와대 홍보수석 재직 당시 뉴스 편성에 직접 개입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히는 등 이정현 의원의 보도 개입 의혹이 예외 상황에서 발생한 일회적인 행동이 아님을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이 공영방송인 KBS의 보도 개입 의혹을 인정한 정황이 있음에도, 이정현 녹취록 파문은 국민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6월 30일부터 7월 14일까지 대형검색포털의 종합랭킹뉴스 50위권에 이정현 의원의 보도 개입 의혹 관련 뉴스는 네이버가 단 1건, 다음은 7건이 전부이며, 7월 1일~ 12일까지(방송 11일까지) 주요 언론사 12곳의 보도를 정리한 <미디어오늘>의 "이정현 녹취록 보도 KBS·MBC 1건, 경향 36건"(2016.06.13.) 기사에 따르면, <경향신문>이 36건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한겨레> 31건,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가 각각 6건, KBS와 MBC가 각각 1건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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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