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와 경찰관계자.
김민정
경찰 관계자는 김순재를 달랬다. 결국 조사받는 사람 수를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농민 입건 문제는 그렇게 처리했지만 한-칠레FTA 문제는 그대로였다. 그 해 12월 한나라당 박관용 국회의장이 고 김윤환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를 비공개 투표로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2004년 2월 16일, 결국 한-칠레 FTA가 국회 비준을 받는다. 농민들은 농민 출신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현실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절감했다. 이는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로 나타났다. 농민회 출신들이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강기갑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강기갑과 함께 활동했던 김순재는 2010년 2월 농협 창원 동읍 조합장에 당선됐다. 지역 조합장 선거에 도전하여 실질적 모범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명도가 높지 않았다. 게다가 보수적인 동네에서 민주노동당 간판을 달고 현직 조합장을 이기는 게 과연 될지 의문이었다.
민주노동당 간판 달고 농협 조합장 도전지역헤게모니가 공고한 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킹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필요로 했다. 주변에서 김순재 선거운동을 돕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선거운동 중반이 되자 힘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김순재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상대방은 금품살포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김순재는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고 한 가지 묘안을 낸다. 평소에 친하게 지낸 형들에게 농협으로 가서 수천만 원 대출 신청을 하도록 했다. 농협 직원이 물었다.
"왜 이리 많이 대출하십니까?"
"순재가 어디 쓸 건지 모르지만 빌려달라네."동네에서는 '김순재가 총알을 수억 준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김순재는 상대가 돈을 쓰면 자신은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게다가 자원봉사자들이 금품살포를 막으려고 '길목 감시조'가 됐다. 선거 나흘 전부터 현직 조합장 선거운동원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차를 대놓고 지켜보고 따라다녔다. 선거에서 표심을 잡는 방법 중 하나인 금품 살포 행위는 포착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인물 선거'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