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자이델이 쓴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1. 추운 날 스타킹을 신을 수 있다
-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추위를 잘 타는 한 독일인이 있었다. 두껍고 갑갑한 내복이 싫어 늘 감기를 달고 다니던 그는 우연히 여성 속옷 코너에 들어갔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다. 그를 반긴 건 알록달록한 색상에 다양한 두께의 스타킹들. 밖에선 따뜻하고, 실내에서도 덥지 않은 데다 색마저 아름다운 스타킹은 자이델에게 해방감을 안겼다. 이후 그는 자기 안에 숨은 여성성을 찾는 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무려 1년을 여자로 살았다.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그 1년간의 경험을 담은 일기장이다.
자이델은 여성들이 느끼는 자유가 부러웠다. 남자라는 이유로 늘 과묵하고, 진중한 모습에다 거무죽죽한 코트를 덮어써야 했다. 반면 여성들은 마치 중력을 피해는 것처럼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남성해방'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남자들은 아무 문제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가 무슨 해방? 남자는 원래부터 자유로웠는데? 남성해방을 얘기하려면 먼저 남성이 자유롭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자이델은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30년간 꼭꼭 감춰뒀던 여성성을 해방시켰다. 여장한 자신의 모습에는 '크리스티아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크리스티아네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사회에 굳게 자리한 성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은 크리스티아네를 짓눌렀다. 일상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어두운 공원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으면서 여성 또한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더이상 나체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옷을 입기 때문이다." 1년간의 프로젝트로 깨달음을 얻은 자이델은 다시 남자로 돌아왔지만, 크리스티아네도 여전히 함께한다. 내면의 여성성을 '나는 남자다'라는 말로 물리쳐 버리던 과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덕분이다. 그는 이제 추운 날이면 언제든 스타킹을 꺼내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