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광장, 표지석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서 살아간다고 적힌 문구 아래, 광장을 명명한 프랑스의 전 대통령 프랑수와 미테랑의 이름이 적혀있다.
정현미
에펠탑으로 향하는 집중력을 조금 흩트려 보자. 가위에서 깨어나는 느낌으로 고개를 살짝 움직이면, 발 아래 적힌 문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살아간다." - 1789년 헌법 1조이 문구를 보러 나는 여기에 왔다. 이 문구로 여기가 파리의 인권광장임을 알 수 있고, 이곳이 인권의 광장이기 때문에 이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인권의 광장이라 하니, 거창해 보인다. 뭔가 대단한 의식을 얘기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 느껴진다. 난민을 돕고, 약자를 위해야 인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거리감도 든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라는 것이 그런 대단한 선의를 논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곳의 인권은 평등을 말한다. 너와 내가 같은 권리를 나누고, 자유의지를 가진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존중해 주는 것. 우리 시대엔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그런 기본예의를 말한다. 또, 이런 지명은 비단 수도 파리 뿐 아니라 프랑스 대도시에 하나쯤은 있는 흔한 명칭이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개똥이처럼 흔하고 평범한 그런 장소인 셈이다. 다만, 에펠탑이 보이는 것만 다르다. 개똥이를 부르짖을 만큼 쉽게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을 수 있는 광장이다.
지난 한 달여간, 파리의 한국민들은 이 광장에서 총 두 번의 집회를 했다. 그러나 이번이 첫 집회는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만 벌써 여러 번, 한국민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지역에서 지난 2012년 가수 싸이가 노래를 불렀다. 한국 언론들은 저마다 싸이와 국격의 상관관계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그 여세를 몰아, 2015년 에펠탑은 싸이 노래에 맞춰 레이저쇼도 벌였다. 역시 언론에는 에펠탑이 보이는 광장에 한국이 등장하는 게 엄청난 국위선양처럼 포장됐다.
같은 장소에 다시 한국이 등장했다. 세월호의 재조사를 요구하고, 대통령의 처사에 항변하는 한국인들이 나섰다. 한 번은 그런 교민들이 부끄럽다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끄러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