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라이엇 게임즈가 문제일까? 트롤 유저의 인성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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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사례를 넘어선 트롤 발생 원인에 대한 일반적인 진단. 게임학자들의 견해는 보통 '개인 탓'과 '개발사 탓' 정도로 압축된다. 일반 유저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를 괴롭히는 맛에 하는 게 트롤링이니 인성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개인 성향이 우선이고 게임 자체는 그런 성향이 좀 더 편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해주는 부수적 원인이라 생각해요." 박현경(22)씨의 말이다. 실제로 게임을 즐기다 보면, 유저들이 공격적인 트롤들을 접했을 때 "쟤 인성 보소 ㄷㄷ" "너 인성에 하자 있냐?"라고 맞대응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 연구팀은 설문조사와 MRI 스캔을 활용해 폭력적인 게임이 개인의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간 폭력적인 게임의 영향을 받으면 폭력적인 개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개인이 게임 내에서도 트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한국게임학회 이준명·나정환·도영임 연구팀은, 라이엇 게임즈사의 '리그 오브 레전드' 이용자 914명(남성 770명, 여성 141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특성을 10가지 변인으로 나눠 설문을 실시했다. 이후 결과를 통계적으로 처리한 결과, '나이'와 '언어적 공격성' '신체적 공격성' 항목이, '트롤링 행위 여부'와 유의미한 관계를 보였단다(이준명 외, 2016).
쉽게 말해 (1) 나이를 먹으면 트롤이 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2) 신체적 공격성이 높으면 높아지고 (3) 언어적 공격성이 높으면 낮아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3)은 "언어적 공격성 문항은 '말다툼을 좋아하는'이라고 해석되기보다 '대화로 풀려는'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부연했다. 그러나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는 개발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개발사 개객끼(개O끼의 오타)"를 비토하는 글도 종종 올라온다.
한국게임학회 서성은·김치요 연구팀은 리그 오브 레전드 이용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게임 기획적 측면의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첫째, 한 판 승부의 압박이 크고 '즐거운 실패'가 아닌 '비참한 실패'를 경험케 하는 게임은 트롤을 양산한다. 플레이 시간은 길고 보상은 크지 않은데 패널티는 크면 유저들은 패배시 시간적, 게임적 자원의 손해가 크다. 팀원의 작은 실수나 패배에 민감하고 서로 책임 전가나 강도 높은 비난이 뒤따를 수 있다.
둘째, 높은 익명성과 사회성 약화도 트롤을 양산한다. RPG는 게이머가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제공한다. 가령 아이템으로 아바타를 꾸며 개성을 드러낸다거나 길드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소속될 수 있다거나. 따라서 평판 시장 작동의 지속성을 어느 정도 보장한다. 반면에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 같은 다른 장르의 게임은 거의 그렇지 못한다. 무기명/랜덤 매칭 시스템으로 팀을 배정받고 경기를 치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정에 대한 합의나 합을 맞춰본 과정이 생략된 생면부지 사람들과 우연히 같은 팀이 됐다 한들, 다시 만날 가능성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낮다. 이들에게 서로 간의 친절과 호혜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협동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애초에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른다.(서성은 외, 2015)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이 관점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니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네요"라고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유지영(가명, 35)씨는 RPG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즐기던 유저였다. "여성 유저에 대해 '여왕벌'이라는 멸칭도 RPG에서 생겼잖아요. 한 판짜리 오버워치 경쟁전에서도 여왕벌이라는 용어가 통하고 있고요. 결국 저는 게임 플랫폼 자체는 단지 접근성(accessibility)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플랫폼이든 역사와 도덕을 만드는 것은 개발진이 통제할 수 없는 유저들이고요." 날카로운 소수의견이다.
기자도 가끔 토르비욘을 하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