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회사 동료들과 볼링을 즐기던 중
남광훈
수입이 일정선 넘으면 블루카드 받아- 자퇴를 하면서까지 취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나요?"앞에서 얘기한 대로 두 번째 석사 과정에 도전한 주요 목적은 취업을 위한 경력을 쌓는 것이었고 또 석사학위를 두 개 받는다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쉽게 자퇴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학부장님과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끝까지 할 수 없었던 점입니다. 물론 취직되면서 경제적인 상황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 이주민의 신분은 현지에서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캠니츠에서 현재 노동 비자로 계신 건가요?"독일에서 대학교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취직했을 때 수입이 일정선을 넘으면 블루카드(EU Blue card Germany)를 받게 되는데 이 또한 독일에서 인재들을 독일에 남게 하게 위한 정책의 하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학업이 끝나면 곧장 모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1년 6개월 동안의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는 것도 그런 정책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현재 블루카드 발급을 신청 중이고 취직한지는 거의 1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 독일은 관공서나 은행 같은 곳을 제외하곤 근무 시간이 유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캠니츠에서 이른 아침에 거리를 다녀보면 새벽 6시만 돼도 출근하는 차가 많이 보이던데요, 현재 독일에서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들려주시죠. "우선 먼저 새벽 6시에 출근을 많이 합니다.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그 사람들이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하루 기본 근무 시간이 8시간인데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코어 타임(Kernarbeitzeit, 집중 근무 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이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하면 오후 3시(저희 회사의 점심 시간 30분은 근무 시간으로 간주되지 않음. 점심 시간은 보통 1시간임)시에 퇴근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회사마다 직종마다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면 관공서나 은행, 우체국 등 기관이나 서비스를 위주로 하는 업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근무하고 매장이나 슈퍼마켓 같은 경우는 대체로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오픈합니다.
- 한국은 보통 점심시간이 1시간인데 30분이면 상당히 촉박해 보이는데 이유가 있을까요?"독일의 많은 회사들은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30분을 유지하는 이유는 코어타임(Kernarbeitzeit)에 되도록이면 집중해서 업무를 마치고 가능하면 일찍 퇴근하는 걸 직원들이 선호해서인 것 같습니다.
현재 캠니츠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Software developer로 근무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차세대 자동차 콕핏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입니다. 주요업무는 HMI development 이고 개발과 테스팅을 함께 담당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제가 싫어하는 회식(일 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일 때 딱 한번 회식 있음)같은 "근무의 연장선"이 없습니다. 회식에서도 술을 권한다거나 부추기는 현상이 없습니다. 음료수든 물이든 맥주든 와인이든 제가 마시고 싶은걸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시고 말 그대로 동료들끼리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릴렉스하는 장소입니다. "근무의 연장선"이 없어진 대신에 주말이나 퇴근 후에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식사나 운동을 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급여 차이 거의 없어- 한국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높은 급여와 복지 혜택이 주어지는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극심해서 중소기업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하지만, 극소수의 대학생만 제대로 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고, 하급직 공무원 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불안정성이라는 단면을 잘 보여 주는데요. 독일은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의 중소기업에서 일해보시니까 어떤가요?"독일엔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독일경제를 주도하는 기업군이 대기업들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인 만큼 중소기업의 인프라나 기업 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성숙되어 있습니다. 급여도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지는 않습니다. 거기에다 독일이 세금이 높기로 유명한데, 소득에 따른 차등 납세 제도가 잘돼 있어서 세금을 떼고 나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직장인들의 삶의 질이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 독일은 유럽에서 난민을 가장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나라이지만, 민족 우월주의로 인한 고통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민족적 편견이 아직 남아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주민으로서 겪은 차별이 있었던가요? "난민 문제도 있고 독일에도 현재 배외 정서가 어느 정도 있는 건 사실이고 동부가 서부보다 조금 심하다고들 합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독일인들한테서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제 주위에서도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처음에 독일에 와서 언어도 잘되고 문화랑 사회 시스템차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 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종종 봐 왔습니다. 그 분들의 공통점은 독일에 살고 있음에도 독일인들과 어울리기를 두려워하고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저의 독일인 동료들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들도 학생시절 학교에 한국이나 중국 유학생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 어울려 보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 어떤 이는 "우리도 유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들 중 대부분이 자기 나라 학생들끼리 어울리고 우리랑(독일 학생) 대화하기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는 것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외국인이랑 대화하기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들 또한 저희랑 먼저 소통하기를 요청하는데 주저함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대체로 독일 사람들이 조금 시크하고 특히 동부 사람들은 표정도 항상 무뚝뚝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먼저 그들한테 다가가고 인사를 건네면 돌아오는 미소가 그렇게 환하고 친절할 수 없습니다.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랑 같은 BMW 320시리즈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우연한 계기로 친하게 되었거든요. 너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전에 한번 할아버지랑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저는 참 좋은 이웃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고 얘기했더니 할아버지께서 "좋은 이웃이 사는지 아닌지는 너 자신이 결정한다"고 하시더군요.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 편견이나 피해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한테 "어디서 누구랑 있든지 자신이 처신을 잘하면 편견은 커녕 오히려 환대받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