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 생리컵 용량 X 3
김희지
편의점에서 구매한 '카X 미니스틱'의 권장 용량은 100~120mL. 생리컵 용량의 3~4배이다. 즉, 보통 마시는 용량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생리컵에서 3번, 혹은 4번 정도 타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머그컵을 씻어 커피를 타 마시는 것보다 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게다가 생리컵은 세워놓을 수도 없어서 계속 들고 있다가 사방에 흘릴 것을 생각하면… 나라면 머그컵 한 번 씻어서 커피를 타 주고 말 것 같다. 결정적으로 가격 3만 원씩이나 하는 생리컵에 커피를 타 주기에는 너무 찝찝하고 아깝다.
실험에 따르면, 생리컵에 커피를 타주는 일은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그럼 작성자는 왜 이런 댓글을 쓰게 된 걸까?
생리에 대한 무지, 여성의 질에 들어가는 물건에 대한 혐오'마법', '매직', '그 날' 등으로 불리면서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생리. 특히 한국 사회에선 남성 앞에서 생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더더욱 금기시되곤 한다. 성교육 때에도 생리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 어떤 남성들은 생리대 광고만 보고 생리혈을 파란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심각하게 하혈한 듯 보이는 사진을 보고 '생리해놓고 뒤처리를 안 했다'며 비난하는 모습까지 봤다.
댓글의 작성자가 생리컵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적인 댓글을 달게 된 데는 생리컵은 물론이고, 생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다. 아마 작성자가 생리가 얼마만큼 나오는지 알고 생리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다면 이런 댓글은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생리컵을 쓰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여성혐오의 한 단면이다. 생리컵 관련 기사 댓글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많은 남성들은 여성을 섹스 상대로만 여겨 여성의 성기에 남성의 성기 이외에 무언가가 들어가는 것을 경계한다. 즉, 남성의 성기만 삽입되어야 할 여성의 성기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가서 성기가 늘어지거나 탄력이 약해져 남성이 여성의 성기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쾌락이 감소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이 남성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쾌락을 느껴 자신과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여성이 남성의 쾌락을 위해 몸을 내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여성혐오이다.
여성의 성기에 삽입하는 탐폰, 생리컵, 그리고 딜도 등 여성용품에 대한 혐오적 시선은 여성들에게도 막연한 공포를 느끼게 해서 이제껏 사용률이 저조했다. 요즘에서야 탐폰과 생리컵의 편안함이 예찬받고 생리컵 판매 합법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으로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무서워하지 않게 된 이유가 크다.
최근에서야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직도 소수의 여성들만 사용하고 있는 생리컵에 대해 이렇게나 빨리 혐오하게 된 건 아직 생리컵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라도 생리컵을 무서워하게 만들어 뺏기고 싶지 않은, 남성들의 비뚤어진 욕망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생리컵, 그리고 생리컵을 쓰는 여성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숨기지 않았던 그 댓글은 결국 생리에 대한 무지, 그리고 여성을 섹스 상대로만 여기는 여성 혐오적 시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제발, 커피는 자기 컵에 스스로 타 먹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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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컵에 커피 타 준다"고? 직접 실험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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