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의 앵커브리핑
JTBC
나는 JTBC를 믿지 않는다세월호 사건을 가장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던 방송은 JTBC였다. 작년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가장 기여를 많이 한 방송도 JTBC였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JTBC는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2017년 9월 <시사저널>). 특히 영향력 면에서 KBS(31.1%), 네이버(22.5%)를 제치고 JTBC(57.7%)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우뚝 올라섰다. 기자들도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를 JTBC라고 응답했다(기자협회 2017년 8월 조사).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댓글사건, 4대강 문제 등 국민이 알아야 할 관심 사안을 어느 매체보다 JTBC가 충실하게 다루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위태롭기까지 했다. 정부의 비판견제 기능은 언론의 마땅한 역할이다. 그럼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출연자를 인터뷰하거나 출연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방송심의 제재 결과는 재허가 심사에 반영됨으로써 방송사 입장으로서는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다. JTBC의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3관왕은 존립의 위기를 딛고 얻은 영광의 자리인 셈이다.
국내 어느 매체보다 정부에 비판적인 감시 기능을 이행하고 가급적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JTBC를 나는 좋아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JTBC가 가장 영향력있고 신뢰할 만한 매체라는 데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JTBC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신뢰할 수 있는 매체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저널리즘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완벽한 손석희 앵커의 보도 스타일에 감탄을 하면서도, 뉴스뿐 아니라 JTBC의 예능 프로그램조차 열혈시청자인 내가 JTBC를 끝까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영방송은 굳이 필요한가방송은 일반 재화나 서비스와 다르다. 돈이 있든 없든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 보장해주어야 할 정보접근권이라는 게 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너무 유료채널에 의존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돈을 지불해야 시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월드컵과 올림픽처럼 국민들이 모두 즐기는 스포츠 경기는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한다. 매달 몇 천 원이라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유료채널에게 맡길 역할이 아니다.
설사 유료채널이 고맙게도 무료로 방송서비스 하겠다고 하더라도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예능, 드라마 등 특정 장르에 치중하지 말고 자연 다큐멘터리,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도 편성해달라고 시청자로서 떳떳하게 요구하고 싶어도 그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다. 그들이 방송이라는 공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거나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프로그램을 편성하라고 무리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노인, 지역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목소리가 다수에 가리지 않도록 귀담아 들어주는 것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것을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액세스권이라 한다. 유료채널이 미디어 액세스권을 보장해준다면 고맙겠지만 안 해준다고 뭐라 할 수는 없다.
유료채널이나 민영방송의 조직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경영방침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제도에 기반하기보다는 조직이나 사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유지분과 구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라 경영철학과 방침은 변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방송 재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도'로서 보장받는 공영방송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보접근권과 액세스권이 중요하고 이를 제도로서 보장받고 싶다면 공영방송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우리 사회에 현재 JTBC와 같은 방송이 꼭 있어야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공영방송 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