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공영방송 파업연대 기고 3편]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등록 2017.09.28 21:49수정 2017.09.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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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의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언론, 적폐인사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기에 속속 밝혀지고 있는 지난 9년 동안의 언론 장악 실상이 더 큰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업은 언론의 '정상화'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부정'의 목소리는 두 공영방송이, 아니 한국의 언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줄 움직임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번 파업을 지지하는 일군의 언론학자들이 파업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오마이뉴스>에 주 2회의 릴레이 기고를 이어가는 '라이팅 위드 스트라이크(Writing With Strike)'를 시작합니다. 언론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행기에 지식인들이 할 행동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무엇을 위해 지금의 힘겨움을 견뎌야 하는지를 제안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파업 기간 동안 모든 언론노동자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언론에 대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JTBC

나는 JTBC를 믿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을 가장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던 방송은 JTBC였다. 작년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가장 기여를 많이 한 방송도 JTBC였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JTBC는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2017년 9월 <시사저널>). 특히 영향력 면에서 KBS(31.1%), 네이버(22.5%)를 제치고 JTBC(57.7%)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우뚝 올라섰다. 기자들도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를 JTBC라고 응답했다(기자협회 2017년 8월 조사).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댓글사건, 4대강 문제 등 국민이 알아야 할 관심 사안을 어느 매체보다 JTBC가 충실하게 다루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위태롭기까지 했다. 정부의 비판견제 기능은 언론의 마땅한 역할이다. 그럼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출연자를 인터뷰하거나 출연시켰다는 이유만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방송심의 제재 결과는 재허가 심사에 반영됨으로써 방송사 입장으로서는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다. JTBC의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3관왕은 존립의 위기를 딛고 얻은 영광의 자리인 셈이다.

국내 어느 매체보다 정부에 비판적인 감시 기능을 이행하고 가급적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JTBC를 나는 좋아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JTBC가 가장 영향력있고 신뢰할 만한 매체라는 데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JTBC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신뢰할 수 있는 매체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저널리즘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완벽한 손석희 앵커의 보도 스타일에 감탄을 하면서도, 뉴스뿐 아니라 JTBC의 예능 프로그램조차 열혈시청자인 내가 JTBC를 끝까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영방송은 굳이 필요한가

방송은 일반 재화나 서비스와 다르다. 돈이 있든 없든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 보장해주어야 할 정보접근권이라는 게 있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너무 유료채널에 의존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돈을 지불해야 시청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최소한 월드컵과 올림픽처럼 국민들이 모두 즐기는 스포츠 경기는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한다. 매달 몇 천 원이라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유료채널에게 맡길 역할이 아니다.

설사 유료채널이 고맙게도 무료로 방송서비스 하겠다고 하더라도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예능, 드라마 등 특정 장르에 치중하지 말고 자연 다큐멘터리,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도 편성해달라고 시청자로서 떳떳하게 요구하고 싶어도 그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다. 그들이 방송이라는 공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거나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수익이 전혀 나지 않는 프로그램을 편성하라고 무리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노인, 지역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목소리가 다수에 가리지 않도록 귀담아 들어주는 것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것을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액세스권이라 한다. 유료채널이 미디어 액세스권을 보장해준다면 고맙겠지만 안 해준다고 뭐라 할 수는 없다.

유료채널이나 민영방송의 조직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경영방침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제도에 기반하기보다는 조직이나 사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유지분과 구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라 경영철학과 방침은 변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방송 재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도'로서 보장받는 공영방송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보접근권과 액세스권이 중요하고 이를 제도로서 보장받고 싶다면 공영방송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우리 사회에 현재 JTBC와 같은 방송이 꼭 있어야 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공영방송 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권우성

불행히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공영방송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공영방송사 내부 직원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너무도 손쉽게 정치적 외압에 무너졌고 우리 제도의 결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이 그렇게 소중한 가치였건만 공영방송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KBS 정연주 사장에게 사퇴 압력부터 넣었다. 정연주 사장에게는 배임혐의를 씌웠다. KBS가 국세청과의 소송에서 '법원의 중재안'을 받아들였음에도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한민국 법원의 말을 따르면 범죄자가 된다는 괴이한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결국 정연주 사장은 해임되었고 배임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되기까지 했다. 정연주 사장 해임을 반대하던 신태섭 이사도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해임하였다. 그렇게 정권은 KBS를 장악해나갔다.

MBC 방송문화진흥회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촛불집회로 이어지자 당시 엄기영 사장을 자진사퇴 하도록 몰고 갔다. 새로 임명된 김재철 사장은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도 까이고 매도 맞고 깨진 뒤 MBC 내부 좌파 80%를 정리했다고 한다.

이후 공영방송에서 해직언론인과 부당징계 사례가 허다하게 나왔다. 우리 사회가 독재정권을 거쳐 민주화된 이후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KBS새노조에 따르면 95일간 파업을 통해 133명의 부당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MBC노조는 170일간의 파업을 통해 10명이 해고되었고 230명이 부당징계를 당했다고 한다(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장악백서>).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최승호 PD는 하루아침에 해고되었다. 최승호 PD와 함께 박성제 기자는 '증거도 없이' 해고된 사례이다.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암투병 중이다. 회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그렸다는 이유로 3년차였던 권성민 PD까지 해고하는 치졸함도 보였다. 해직언론인들은 현재 대부분 법원에서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다.

파업에 참여하거나 주도했다는 이유로 비제작부서로 전보, 교육 등 보복성 인사도 수없이 남발되었다. 시사고발팀 제작진을 지역으로 발령내거나 능력있는 아나운서나 PD,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스케이트장 관리 업무를 맡거나 브런치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낙하산 사장과 부당인사의 문제는 그들의 생산물인 공영방송 프로그램으로 극대화되었다. 사회비판과 감시 역할을 담당했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폐지되거나 축소되었다. KBS <미디어 포커스> 등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명칭과 방송시간대가 변경되는 방식으로 축소되었다. MBC <PD수첩>이 속해있었던 시사교양국은 폐지되었다. 4대강 사업,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 친일파 관련 방송이 불방되거나 축소되었다. 용산참사 보도, 세월호 참사 등 중요한 사건에서 공영방송은 오보와 편파보도로 얼룩졌다. 방송현장 곳곳에서 공영방송 KBS, MBC 기자들에게 시민들은 냉담을 넘어 냉소를 보냈다. '기레기'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태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의 이사진과 경영진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공영방송이 망가지는 데 주도했거나 최소한 방조했다. 지난 정권 때 임명되었던 공영방송 이사진과 그들에 의해 임명된 경영진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권우성

현재 공영방송의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고 사퇴를 요구하는 데 있어 어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탄압이라고 한다. 또는 과거 정연주 사장처럼 공영방송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동일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한다. 적폐 청산을 얘기하면서 적폐와 같은 행동을 해서 되겠냐는 '준엄한' 꾸지람도 나온다.

현재 공영방송이 정상인가. 공영방송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왔다면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한다. KBS, M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편파보도와 여론왜곡을 일삼는 적폐세력 중 하나였다. 심각한 문제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다. 당연히 지난 정권에서 비정상적으로 임명된 공영방송 사장과 경영진이 물러나고 책임져야 한다.

현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사장 퇴진 요구가 지난 정부가 행사한 부당한 정치적 압력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는 '외압'을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지금은 내부로부터의 요구이다. 내부 제작진 다수가 파업을 찬성하고 공영방송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경영진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외압'이 아니라 '내부고발'이자 '내부자성'인 것이다. 내부 자정과정에 있어 경영진들이 무책임과 무시로 계속 일관한다면 파행방송에 대한 외적 규제가 개입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만약 문재인 정부가 언론 탄압을 한다면, 두 눈 크게 뜨고 대응해야 한다. 지난 정권 때 공영방송의 제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뼈져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이번 파업으로 노조방송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굳이 선택하라면 나는 소수 경영진이 장악하는 방송보다 다수 노조의 지지를 받는 방송이 차라리 낫다. 그리고 노조 방송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더 공영방송의 제도적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한다. 이제는 여야가 힘을 합쳐 공영방송 제도개선을 실행으로 옮길 단계이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권이 권력을 가지더라도 우리는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그러진 공영방송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영방송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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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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