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풍경
정대희
한 사장은 3년 전만 해도 의류 도매업을 했다. 대그룹 브랜드로 납품해서 백화점 매장으로 유통했다. 그러다가 사기를 당해 6억여 원을 날렸다. 빚을 갚으려고 집까지 처분했더니 눈앞이 캄캄했단다. 그는 아내와 노가리 골목에 와서 맥주를 마시다가 도로 위에서 맥주를 들이키는 인파에 깜짝 놀랐다.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가게 세를 내고 장사 물품을 사려고 융자를 받아서 마부호프를 계약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겠다고 결심했지만, '황제 알바' 사건이 끝난 뒤에도 쉽지 않았다. 술집을 찾는 사람들에겐 낭만이었지만 노가리 골목의 도로에 깐 좌판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다. 2년 전 이 골목은 '서울 미래유산골목'으로 등재됐지만 도로에서의 불법 영업 논란과 민원이 제기돼 노상 영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3년 전 마부 호프로 출발했는데, 노상 영업이 중단된 뒤 한 사장은 2층을 임대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2개 층의 가게 월세를 내기가 버겁기는 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이 골목에 좌판이 깔리면서 한씨의 부담이 커졌다. 중구청이 지난 5월부터 이곳을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구역'으로 정해 옥외영업을 허용해줬지만 도로점용료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노가리골목 번영회에서 중구청에 도로점용료를 내고 노상영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가게세를 내기도 힘들어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티다가 사인을 했습니다. 그때 번영회는 '관공서에 도로 영업 등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내밀었습니다. 이걸 어기면 번영회 소속 호프집에 각각 1000만 원씩을 내라는 것이었어요."그는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지만, 그 뒤에 돌아가는 상황도 불만이었다.
"각자 가게 앞에 테이블을 깔기로 했는데, 번영회는 가게 양 옆으로 2.7m 정도를 더 깔게 해준다고 신청서를 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보시다시피 양 옆에 호프집이 있습니다. 더 이상 좌판을 깔 수 없어요. 그런데 옆집들은 좌판을 깔 공간이 있어요. 근처에 무허가 건물에서 영업하는 가게도 있는데, 거긴 자리를 깔 공간이 많습니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잖아요."한 사장만이 도로점용료 정책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근 호프집의 한 사장도 "테이블 한 개를 도로에 깔 수 있는데, 두 달에 30만 원을 냈다"라면서 "잘 나가는 호프집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우리 같은 가게는 부담만 늘기 때문에 좌판을 깔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호프집의 사장도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도로점용료를 낼 돈이 어디 있냐"고 말했다.
한철희 사장이 중구 보건소 위생과에 9800원을 주고 '주마등 호프집'이라는 상호를 '공정한 행정집행을 촉구하는 호프집'으로 변경한 이유이다.
한편, '을지로 노가리호프 번영회'의 손경태 회장은 "옥외영업이 불법이어서 그동안 수차례 벌금을 내서 힘이 들었다"라며 "번영회의 운영회에서 가게끼리 민원을 내면 패널티를 주자는 차원에서 1000만 원 벌금을 협약서에 명시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도로점용료를 내고 영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가게들이 처음에는 호응을 했는데, 상대적으로 영업 효과가 떨어지는 곳도 있기에 지금은 옥외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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