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열릴 예정인 대전시 도시공원회위원회에서 월평공원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의 '부결'을 촉구하며 갈마동주민대책위가 시청 북문 앞에서 8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장재완
처음으로 알아야 했던 것이 도시공원 일몰제였다. 최근 월평공원을 둘러싼 갈등이 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지정된 부지가 일정 기간 공원으로 개발되지 않을 경우 공원지정 효력을 자동 해제하는 제도다. 현재 일몰제 시한은 2020년 7월로 이를 넘기면 이들 부지의 용도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국의 도시공원 면적은 516㎢로 서울 전체 면적의 80%를 상회하는 엄청난 면적으로 대전의 월평공원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 부지를 매입할 예산이 지자체에 없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대안으로 제출되었다. 그래서 다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민간자본이 70%를 투자해 공원을 조성하여 기부체납하고 30%의 비공원 시설로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도시공원 일몰제 기한 이후 난개발을 막고 공원을 보존하자는 동일한 취지 하에 한쪽에서는 3000세대 가량의 아파트 건설을 기조로 하는 월평공원 개발에 반대하고 또 한쪽에서는 개발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월평공원 인근의 주민들은 자신의 환경권을 침해받고, 교통문제 등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한편, 토지소유자들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위해 개발에 찬성하면서 찬반이 맞서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헌법재판소이 결정이 1999년이었는데 그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지역사회 시민은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었는가? 둘째, 돈이 없는 지자체를 대신하여 정부가 공원을 매입할 수 있는가?, 셋째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부지구입비용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꼭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여야 하는가? 넷째, 시민의 책임과 참여라는 측면에서 일부 상징적이라도 내셔널트러스트와 같은 민간참여운동이 가능한가? 다섯째,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갈등이 첨예화하기 이전에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는가?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다섯가지 문제에 대하여 각각 답을 하기 위해서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오는 10월 26일이면 3차 도시공원위원회가 최종결정을 하기로 한 시점이다. 그간 심정적 의견만을 가지고 제대로 살펴보고 함께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이 글은 세 번째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왜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여야 하나?도시계획 패러다임은 산업화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아파트와 도로 등 대규모 건설의 신시가지 개발방식에서 도시재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의 유치나 발전에 따른 인구증가가 없는 상태에서 녹지를 훼손하여 대규모 아파트를 짓게 된다면 결국 인접 지역의 어딘가는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 '유령의 마을'이 될 것이 뻔하다.
기왕에 형성된 도심은 공동화되고 생태계의 허파와 생명줄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수십 년간 공을 들여 구축한 원도심의 주택, 도로와 교통을 포함한 제반 도시 인프라는 자신의 쓸모가 창창함에도 버려지고 외면당한다. 그런데 또 어딘가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글로벌 기업의 자재와 상품으로 도배된 새로운 아파트 단지의 건설이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이미 구축해 온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자원과 에너지는 대책없이 버려진다.
우석훈 박사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 매출액이 20%를 상회할 때마다 한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투자요건만 보더라도 더 많은 '지대'를 발생시킬 수 있는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본이 산업과 기술개발에 투입되기는 어렵고, 장기투자가 사라진 경제운용이 2∼3년 계속되면 경제는 근본에서부터 위기 국면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이 건전한 산업육성에 투자하기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경제는 투기경제가 된다. 이른바 이러한 카지노 자본주의는 비단 대전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야만이 우리 지역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 공화국, 토건국가라는 말과 더불어 최근에는 '국토의 신자유주의'라는 말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학 연구로 국제학계에서도 명성이 높은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1993년 한국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큰 충격을 받아 연구에 착수하였고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는 불가피하다는 우리의 직관과는 정반대되는 사실인데, 아파트가 고층이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많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층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동간 간격도 더 넓게 잡아야 하므로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현재 60.1%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세워진 아파트는 23년을 주기로 해체되고 재건축이 시작된다. 아파트 수명이 프랑스 86년, 미국 103년, 영국 141년인 것과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