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친구는 펜을 들지 않았다

2017오마이뉴스 글로벌 행복포럼 <행복교육의 미래를 말하다>에 다녀와서

등록 2017.10.31 12:18수정 2017.10.3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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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not good at English."

'2017 오마이뉴스 글로벌 행복교육포럼'(이하 포럼) 조별토론 시간. 자기소개와 함께 내 영어 현주소를 미리 밝혔다. 유명한 'be good at' 숙어를 사용해서.

테이블 위에는 종이가 사람 수대로 놓였다. 조원들 이름이 쓰여 있다. 인상 깊은 말을 필기하는 종이다. 근데. 잠시만. 영어로 대화하니까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지.

적지 못했다.

가만 보자. 나뿐만이 아니다. 이 친구도, 저 친구도, 그 옆에 친구도. 비어 있다.

가만 보자. 영어를 못 해서가 아니다. 이 친구도, 저 친구도, 그 옆에 친구도, 덴마크인이다.

오호라.


순탄하게 종이를 채우는 한국 학생과는 달리, 그들은 펜조차 들지 않는다. 묘한 동질감.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던 진행팀이 우리 조에 왔다. 종이를 한번 훑는다. 곳곳에 빈 종이가 눈에 띈다.


"종이 틈틈이 채우면서 하세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 후에 영어로 한 번 더 반복했다. 말을 끝내자마자 옆에 덴마크 학생이 으쓱한다. 영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오호라. 단어가 조금 들렸다. 추측해보건데, 덴마크에서는 토론 중에 필기하는 문화가 없는 모양이다. 필기보다 기억해 두는 편이란다. '대신 대화에 집중한다'라고 말했다.

 조별로 모여앉아 자기 소개를 준비하는 긴장된 순간.
조별로 모여앉아 자기 소개를 준비하는 긴장된 순간.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참 필기 잘 한다. 마치 청와대 출입기자마냥, 그들의 공책은 빽빽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강의실 풍경은 학구열이 넘친다. 공책에 검은 글자가 채워지는 것에 비례해서, 강단 위 사람은 청중의 검은 정수리를 본다.

우리 모둠 토론 분위기가 마치 조용한 강의실 같다. 강사가 없으니, 독서실? 한 사람이라도 강단에 오른 것처럼 열심히 말하면 좋으련만. 한국 아이들은 침묵에 익숙하고, 덴마크 학생들은 침묵이 어색해서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다.

참다 못해 입을 열었다.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국어로 당당하게, '너무 조용한데'라고. 덧붙여 '난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런 거야. 미안. 더 능숙하게 하면 좋을 텐데'하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구차했지만, 옆에 앉은 덴마크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관없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씩 해소됐다.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씩 해소됐다.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물론 계속 독서실마냥 조용했던 건 아니다. 질문과 답이 틈틈이 오갔고, 나도 꾸준히 한국어로 말했다. 통역해 준 친구가 수고가 많았다. 내 말을 듣고 옆에 덴마크 친구가 'I agree'라고도 했고, 필기 못하는 덴마크 아이 종이에 내 이야기의 영어 번역문이 적히기까지 했다. 어머나. 영광이어라.

조용했던 토론이 끝나고, 사진 찍고, 서로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분위기다. 어라. 이건 아니지. 옆 자리 덴마크 친구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nice meeting you."

핵심은 'meeting'이다. 만났을 땐 'to meet', 헤어질 땐 'meeting'. 아주 좋은 표현이었다. 원어민같이 능숙했다.

"oh, nice meeting you. good luck."

음, '굿럭'이 헤어지는 인사로 쓰이는지 처음 알았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조별로 기념 촬영.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조별로 기념 촬영.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모두가 마무리를 위해 대강당으로 이동했고, 토론 장소는 비었다. 종이도 여전히 비어 있다.

뭐라도 적어야겠다 싶어, 펜을 들었다. 쭉, 기억을 되짚는데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텍스트 위주의 교육과 사람 위주의 교육'.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잘 살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결국 우리는 사람 만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배움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텍스트 위주이다. 덴마크가 괜히 십 이년 동안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는 게 아니다. 선생님은 교과서 텍스트를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삶을 가르쳐야 하는데, 1년으로는 불가능하다.

덴마크 교육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정답은 아니다. 땅 넓이도 다르고 인구수도 다르다. 문화 차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상황에 꼭 맞는 교육을 찾아야 한다. 그 끝이 어딘지는 몰라도, 과정만으로도 지금보다 행복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우선이 되는 교육. 덴마크는 50년 전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우리는 지금, 이 고민 앞에 섰다. 당장 이루어낼 수는 없지만, 실현 가능함은 분명하다. 뚜벅뚜벅, 우리 모두가 이 길을 잘 걸어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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