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어' 변기도 못 내리던 병사들의 고통

[입영부터 전역까지⑭] 변기물을 내릴 물도 없다!

등록 2018.01.29 10:05수정 2018.01.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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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대 내 단수로 인한 물 부족 고통이 매우 심각했다.
부대 내 단수로 인한 물 부족 고통이 매우 심각했다.unsplash.com

군대에서의 여름은 더욱 덥습니다. 두꺼운 전투복 차림이지만 '군인의 품위 유지' 때문에 올리지도 못하는 전투복 상의 소매. 나중에야 사단본부 차원에서 '전투복 소매를 올려도 된다'는 지침이 떨어지니 그제야 소매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병사들 몇몇은 몰래몰래 소매를 올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더우니까요. 간혹 어떤 간부들은 그런 병사들을 지적합니다. '허락도 없는데 왜 멋대로 소매를 올리냐' 참고로 그 병사들은 땡볕에서 야외 작업을 하던 병사들이고 이 간부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사무실에서 근무합니다. 참 야박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장실 변기 물도 '없어서' 내리지 못하는 부대

이렇게 더운 날에 샤워도 못하면 어떨까요? 최악이지 않을까요? 제가 복무했던 부대가 딱 그랬습니다. 샤워는 고사하고 빨래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도 내리지 못했을 정도죠. 그만큼 부대 내 단수로 인한 물 부족 고통이 매우 심각했죠. 제가 복무중인 부대는 상수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대 내 물탱크에 물을 저장하고 그걸 끌어다가 쓰는 방식이었죠.

당연히 문제가 컸습니다. 물이 부족하다며 툭하면 부대측에서 단수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물을 많이 쓰게 되는 여름철에 더욱 극심했습니다. 대대 인원 외에도 인접 소부대, 상급 부대도 전부 같은 사정인지라 전부 우리 부대의 물탱크에서 물을 끌어다가 같이 써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은 만큼 물도 더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빨리 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지는 속도만큼 보충해 줘야 할 물이 오지 않았습니다. 물탱크의 물을 보충해 주기 위해서는 인근 소방서에서 소방차가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물탱크에 물이 떨어져도 물을 공급해 줄 소방차가 오지 못했습니다. 소방서가 그렇게 한가한 곳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죠. 땀범벅이 되는 한여름에도 씻지 못하는 건 기본입니다. 속옷을 갈아입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빨래를 하지 못하니 그렇습니다.

여기서 이런 반박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편하게 세탁기로 빨래하지 말고 손으로 해라.' 물론 병사들은 착실합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손빨래를 합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최소한의 물은' 있어야 합니다. 그 물도 없습니다.

한편 그렇다고 물이 아예 뚝 끊기는 건 아닙니다. 저녁 무렵에 아주 조금, 혹은 주말에 잠깐 나오기는 했습니다. 이때가 씻거나 빨래를 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대원 100여 명도 마찬가지죠. 그들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입니다. 샤워는 그나마 괜찮습니다. 서로 빨리 빨리 씻고 나가면 됩니다. 뒷사람을 위해서죠. 물이 끊기기 전에 급하게 씻고 나갑니다.


문제는 빨래입니다. 세탁기 수는 고작 3~4대. 이걸로 1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빨래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 빨래를 하려면 기본 1시간은 소요됩니다. 그것도 1인당 1시간씩입니다. 개인 빨래량도 어마어마하죠. 그만큼 많이 쌓였으니까요. 결국 대다수는 세탁기를 이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빨래로 해결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손빨래는 깔끔하게 빨리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짜도 땟국물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흙먼지가 날리는 야전에서 활동하는 군인이기에 더더욱 힘들죠. 그래도 물만 나오면 다행입니다. 문제는 빨래를 하는 와중에 물이 끊기는 경우입니다. 그런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결국 절대 다수는 제대로 된 빨래를 하지도 못합니다. 세제가 없어 빨래를 못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물이 없어서 빨래 못하는 경험은 정말 군대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물 부조리'

이 때문에 부조리들도 생겨났죠. 병사들은 세탁을 할 때 빨래를 가득 넣은 세탁망을 각자의 순서에 따라 세탁기 위로 올려둡니다. '대기자'라는 표시입니다. 헌데 여기서 부조리가 생깁니다. 주로 상병 이상의 선임들이 그랬죠. 먼저 와서 놓은 후임병의 빨래망을 슬쩍 치워 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의 빨래망을 올려놓는 거죠. 그나마 빨래망을 자기 다음 순번으로 치워주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겁니다. 아주 고약한 선임들의 경우는 먼저 놓여 있던 후임병의 세탁망을 아예 구석으로 집어 던지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 후임의 빨래망은 순번에서 영원히 사라진 겁니다. 그러면 그 후임병은 그 날 빨래하기는 틀린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대, 소변도 보지 못합니다. 양변기에 내릴 물이 없으니까요. 정말 최악의 고역중 하나입니다. 단수된 화장실에서 누군가 똥을 누고 그냥 가버리는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있습니다. 그렇게 똥을 누고 물도 내리지 않은 변기에, 또 누군가가 그 위에 똥을 싸고 간 것입니다. 미칠 노릇이죠.

2014년 당시, 제가 근무한 부대에서 살아가던 군인 모습입니다. 이렇게 제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여름마다 물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심지어 볼 일 처리도 못하는 비위생적인 환경. 이런 고통은 2015년 부대 상수도 공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됐습니다. 제 계급이 상병 말에서 병장 초를 지나가던 때입니다.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부대 내 상수도 공사가 끝난 것입니다. 마침내 물과의 전쟁이 종식된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왜 부대는 단수 문제를 방치했을까?

그렇다면 왜 부대에서는 이런 물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했던 걸까요? 단수는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이미 부대 간부들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상수도 공사는 늘 부대에서 뒷전으로 밀려 있었습니다. 서두르면 될 일인데도 말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간부들이 생활하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거든요.

간부들은 대부분 부대 밖 영외 숙소에서 거주했습니다. 즉 일반 가정집에서 살고 있으니 부대내 단수로 인한 고통을 거의 몰랐던 것입니다. 거기는 상수도로 연결되어 있으니 언제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왔을 겁니다. 영내 거주, 즉 영내 간부숙소(BOQ)에 사는 간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에 대한 부족을 느낄 일이 없었습니다. 부대 내 물탱크가 간부 숙소와 대대장실 화장실로 우선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부대내 병사 화장실은 물이 끊겨도 이들 간부숙소와 대대장실에서는 물이 계속 나온 거죠. 물을 쓰는 것조차 간부와 사병들 사이에서 차별을 받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물 부족에 관심 없던 부대측에서 갑자기 상수도 공사를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2014년의 일입니다. 이 해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물이 부족해진 겁니다. 대대 내에 먹을 물조차 나오지 않은 거죠. 결국 그 여파가 영내 간부숙소에도 미쳤지요. 그러자 이전까지 진전이 없던 부대내 상수도 공사에 박차가 가해졌습니다. 간부들에게 피해가 오니까 신속하게 행동한 것이죠. 만약에 그때도 간부숙소에 여전히 물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분명 제가 전역할 무렵까지도 상수도 공사는 지지부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한번은 이런 적이 있습니다. 단수가 지속되었을 때 결국 병사들이 불평했습니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간부에게 개선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때 어느 간부가 내 놓은 답변은 너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호통쳤습니다.

"야, 군인들이 뭐 이리 불평이 많아! 전쟁 때도 씻고 살래?"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간부. 말하면서도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간부의 몸에서는 우리와 달리 쾌적한 샴푸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병사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간부가 옳았기에, 혹은 그 간부의 생각에 동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계급장'의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일선 부대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지하셔야 합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것이지 '사회와 비교해서' 좋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50만 명이 넘는 일반 병사들은 흙먼지와 뒤엉키며 국토 수호의 책임을 다합니다. 그런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전보다 좋은 환경'이 아닌 '사회만큼 좋은 환경'입니다. 사회보다 더 좋은 것은 욕심내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수준의 환경만은 보장해 줘야 합니다.

열악한 환경은 병사를 강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들게 만듭니다. 강한 전투력은 '가혹한 환경'이 아닌 '최고의 환경'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게 상식 아닌가요?

#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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