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스님이 키르기스스탄 찾은 까닭은?

어려운 사람들 도와온 수덕사 법웅스님... "그들에게 필요한 빵 한 조각이 바로 부처"

등록 2018.05.14 17:06수정 2018.05.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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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보행기구로 9년 만에 처음 걷는 지체장애아 국립 막사트 재활센터에서 스님의 기증으로 구입한 장비전달식에서 재활보행기구를 착용하고 처음 걷는 9살인 지체아동.
재활보행기구로 9년 만에 처음 걷는 지체장애아국립 막사트 재활센터에서 스님의 기증으로 구입한 장비전달식에서 재활보행기구를 착용하고 처음 걷는 9살인 지체아동.전상중

해마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쯤이면 어김없이 키르기스스탄을 찾아 오는 한 스님이 있다. 요즘 한국 불교계가 시끄럽다지만... 일 년 이 년도 아닌 25년이란 긴 세월을 매년 이슬람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을 찾아 오는 스님이기에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거절하는 스님을 어렵게 설득해 만났다.

손수 다린 차(茶)를 내며 운을 떼는 스님은 수덕사 능인선원 전월사 주석인 법웅 대선사(法雄 大禪師)이다. 그는 매년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기간 동안 좌선수학에 전념하다 참선기간이 끝나면 키르기스스탄을 찾는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본 쓰레기통을 뒤지던 중생들이 눈에 아른거려 그후부터 매년 찾아오고 있단다.

- 오늘도 자선행사를 하셨던데요.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키르기스스탄 지체아들을 돕는 행사를  마치고 막 들어왔습니다. 오래전에 나한테 부탁한 것인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달해서 홀가분합니다. 이 시설에 약 100여 명의 정신박약아와 지체장애아동들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모스크바로부터 구입해 온 특수장비인 재활보행기구로 9살 난 장애아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생전 처음 걷는 모습을 보고 모두 박수를 치며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부처님의 미소를 본 것 같습니다. 하하."

키르기스스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 어떤 이유인가요?
"1993년. 성철스님의 상좌이신 원명스님의 부름으로 우리 동포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러 왔다가 선원에만 있던 촌놈선사가 생전 처음으로 비슈케크에서 지옥을 봤지요. 25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 소련으로부터 막 독립한 어려운 시절이라 시내 뒷골목에서 썩은 고양이 시체가 나뒹굴고 화공약품 찌꺼기들이 뒤섞인 쓰레기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으려 아귀다툼하는 중생들을 보고 그때 깨달았어요. 그후 귀국하려는 마음을 접고 여비를 털어 빵 500개를 구입해 나누어 줬는데 그후부터 아예 당시 원명스님이 세웠던 비슈케크 보리사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매주 1번씩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며 4년을 더 머무른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25년이나 흘렀네요."

키르기스스탄의 부처님오신날  국립 막사트재활센터에서 법웅스님의 의료재활보행기구 전달식.
키르기스스탄의 부처님오신날 국립 막사트재활센터에서 법웅스님의 의료재활보행기구 전달식.전상중

- 25년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뭘 도와줬다고 내세울 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보시하는 몇 푼의 돈은 잘사는 나라에는 도움이 되기 어렵지만 이곳은 작은 금액이라도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고, 많은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보시를 시작했고 25여 년간 고려인을 비롯해 독거노인, 버려진 유아,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 장애를 가진 배고픈 사람들에게 밀가루와 쌀 등 기본적인 식료품부터 구충제같은 의약품, 재활시설과 형편이 어려운 장애아 수술비 등 규모와 상관없이 대승불교의 자비행을 실행할 뿐이지요."

- 이슬람국가에서 불교포교가 쉽지 않을 텐데?
"'백초시불모(百艸是佛母)'라... '백가지 풀이 모두 부처의 어머니'라는 만공스님의 가르침처럼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했습니다. 당장 배고프고 몸아픈 중생에게 무슨 부처님을 가르칩니까?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빵 한 조각. 걸칠 옷가지 한 점, 의약품 하나이고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바로 부처이지요."


- 주지스님도 아니신데 비용은 어디서?
"맞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도는 운수납자지요. 인도의 테레샤 수녀는 부자라서 빈민구제에 나섰나요? 선원에서만 좌선수행하던 소승의 키르기스스탄 활동을 전해 들은 사단법인 정각나눔회, 호압사, 선본사 등등 그리고 인연이 되는 여러 신도분들이 조금씩 보태주셔서 해마다 비슈케크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함께 전하고 있지요."

 막사트 재활복지센터에 2017년에 지적장애아를 위한 영상치료장비시설을 꾸며 주었다.
막사트 재활복지센터에 2017년에 지적장애아를 위한 영상치료장비시설을 꾸며 주었다.전상중

 선천성 질환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신생아를 돌본 법웅 스님.
선천성 질환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신생아를 돌본 법웅 스님.전상중

- 기억에 남는 보시는?
"십여 년 전에 세상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어린 생명이 선천성 직장 항문기형을 갖고 태어나 항문이 막혀 먹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 안에서 수술비가 없어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숨에 달려갔어요. 차마 그냥 볼 수 없어 내가 무작정 수술동의서에 사인해주고 생명을 구한 일이 눈에 선한데 이런 게 바로 부처님의 일이지요."


법웅스님은 1978년 송광사 천자암의 활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올해로 법랍 40년이다. 근래 몇 년 동안은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안거를 지내며 구름처럼 떠도는 법웅스님은 선방에서 한평생을 지내온 선객이며 조계종 선방의 대표적인 납자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어찌 부처가 이 땅에 온다면 주장자만 들고 있겠느냐"면서 "백 가지 천 가지 모습으로 자기 본성의 모습을 드러내며 삶의 현장에서 부처행을 실천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기자에게 합장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법웅스님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부처님 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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