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6월 29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10일 일요일 오전, 지인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긴 글이 하나 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미술치료사 지영(가명)씨였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렴한 숙소에서 지내고는 있지만 돈이 떨어져 곧 나와야 할 처지라고, 그중에서도 아이나 여성이 있는 가족들이 당장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나 기관의 별다른 도움 없이 알음알음 개인의 도움으론 숙박비를 대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함께 보내온 사진엔 나란히 선 어린아이들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막 미술치료를 시작한 아이들이었다. 내전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져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곳까지 흘러온 아이들. 너무도 착하고 예쁜데, 자꾸 눈치를 보는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나는 이들과 벌써 '구면'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 그 안에서도 원도심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화려하기보다 실속 있는 숙소들이 많은 이곳. 이를테면 '공항 근처의' '가성비' 따위의 수식어를 붙일 만한, 게스트하우스나 관광호텔 같은? 내 생활 반경 안에서 소위 '아랍계'로 보이는 무리를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국 관광객이 떠난 원도심에서 낯선 외모의 그들을 마주친다면 대번에 눈길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고 보니 얼핏 기사를 본 것도 같다. '제주서 예멘인 500명 난민신청...' 그때만 해도 내 이야기로 와 닿지 않아 넘겼다. 하지만 이로써 '예멘에서 온 난민'이 '내 가까이 살고 있음'이 아주 분명해졌다. 난민의 문제는 이제 내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오갔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시급한 것은 숙소였다. 빈집이 있다면 좋지만, 저렴한 숙소나 텐트도 좋다고 했다. 홈리스가 될 사람들에게 텐트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다음으로는 먹을 것. 다른 문화 탓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 외 요리도구라든가 침낭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몇 명 되지 않는 채팅방 속 사람들이 텐트와 코펠을 챙기겠다고, 지인들에게 숙소를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돈을 부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가장 쉽게 떠올린 게 돈을 보내는 일이었다.
돈으로는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즉석밥이나 캔 음식을 살수도 있고 숙박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돈을 내면 누가 얼마나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돈만으로 되지 않는 건 어쩌고... 얼핏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대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거,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는데? 도움이 필요한 건 분명한데, 소수로는 곤란하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데, 도대체 누구에게 알리지?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논란에 휘말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머지않아 누군가와 논쟁 아니, 언쟁을 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